가을시를 쓰려고 책갈피에 넣어둔 단풍잎은 수액을 빼앗긴 채 정숙한 미라가 되어있었다. 장롱 속 나프탈렌 같은 시간의 탈색은 얼음 속에 흐르는 냇물처럼 형체 없이 지나간다. 겨울의 시는 언제 쓸 수 있을까? 대한 지난겨울은 영혼 없는 눈사람처럼 여전히 부동자세다. 대춘을 꿈꾸고 있는가? 이천의 백송은 하얀 가지를 깃발처럼 날리며 봄의 양광을 그리워하고 있다. 다소 불안정한 기슭에서 포즈를 잡은 백송은 나의 마음을 단숨에 당겨왔다. 안정된 구도를 유지하고 있는 자세가 사뭇 멋지다. 시골조합장 같은 포즈도, 루이비똥 백을 든 도시 여인도 아닌, 이 나무의 형상은 독립투사 같다. 일송정 푸른 솔이거나 혜란강 건너 말달리던 선구자 같은. 겨울이 갈 때 까지 이 하얀 소나무를 내안에 심어두리라. 순결한 마음처럼.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