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철도노조파업 철회 위한 긴박했던 24시간

작년 12월9일 철도 민영화를 반대하며 전국철도노조가 파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파업 20일이 넘도록 정부는 철도노조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짓고 대화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파업의 장기화로 국민의 불편과 불안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화살은 국회로 돌아왔다. 이 지경이 되도록 국회는 뭐 하고 있느냐, 중재 하나 못하는 무능한 국회라며 국회를 향한 국민의 비난 여론이 커졌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정말 중재할 만한 사람이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뭔가를 해야 되겠다 마음을 먹게 됐다.

12월29일, 최은철 철도노조 사무처장을 만나기 위해 민주당사로 향했다.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을 피해 최은철 사무처장이 민주당사에 피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에 한 번씩 들러 격려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연말인 터라 일이 산적해 있어 발걸음을 하지 못해 왔다. 그래서 모처럼 시간이 나자 일요일임에도 최은철 사무처장을 만나러 나섰다.

민주당사로 가기 전에 김한길 대표가 국가정보원 개혁 원안 고수를 촉구하는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기자회견장에 먼저 들렀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김한길 대표와 차 한 잔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나는 민주당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러자 김 대표가 나에게 중재를 해 보라고 제안했다.

최은철 처장을 만났다. 최 처장은 국토교통위원회에 철도산업발전을 위한 소위원회를 만들어주면 파업을 풀겠다고 했다. 특별위원회나 소위원회를 만들어주면 파업을 철회하겠다고 했지만, 정부와 여당의원들의 반대가 심해 해결을 못 하고 있었다. 국토교통위원회 내부에서도 야당위원들이 소위원회 구성을 계속 요구했지만 정부와 여당이 완강하게 반대를 했다.

소위원회 설치 외에 다른 조건이 없음을 확인하고 여당의 공식라인에 접촉해 노조 측 의견을 전달하며 결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대통령 의중에 반하는 결단에 난색을 표하는 공식라인과는 더 이상 대화의 진전도 없었고 해결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고민 끝에 김무성 의원이 떠올랐다. 김무성 의원은 협상이 뭔지를 아는 정치 선배였고, 어느 순간부터 형님이라 부르며 신뢰관계를 맺어왔다.

김무성 의원에게 소위원회 구성은 여야 동수로 하되, 위원장은 여당이 맡는 것으로 제안했다. 여당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먼저 제안한 것이다. 그동안 협상을 하면서 터득한 기술이었다.

나는 노조와 야당을 맡고 김 의원은 여당과 청와대를 설득하면서 밤 9시께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여야 지도부와 노조위원장까지 설득을 마친 나와 김 의원은 미리 준비해 둔 합의서 초안을 확인하고 급히 민주노총 사무실로 달려가 김명환 노조위원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은 우리의 서명이 들어간 합의서에 서명했다.

솔직히 나는 그동안 민주노총에 대한 인식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과 접촉하면서 평소에 가지고 있던 나의 인식이 선입견이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도 따뜻한 인간성을 가진 보통의 국민이었고, 소통 가능한 합리적인 사람들이었다.

민생은 현장에 답이 있다.

이번 일을 통해 민생은 현장에 답이 있다는 내 정치철학을 다시 실감하게 됐다. 국민의 한 사람인 노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처럼 국민의 아픔을 다독여줘야 하는 것은 정치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국민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있다. 정부의 지시를 잘 따르는 사람하고만 대화하는 게 소통이라 말하는 정부를 보면서 답답한 마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시대에 당리당략을 떠나 진정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국민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유능한 협상가가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박기춘 국회의원(민ㆍ남양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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