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에 소재한 920살 향나무다. 수령 900년이라면 속장경이 간행되고 윤관이 여진정벌 하던 고려시대 사람들과 살아와 지금에 이른 것이다. 수년전 이 나무를 찾았을 땐 이미 불에 탄 듯 까만 고사목이었다. 그땐 그래도 잔가지가 꽤 뻗쳐있었다. 제 몸을 비틀어대는 단단한 근육질이 인상적이어서 다시 찾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세월의 풍화는 죽은 나무조차 휩쓸고 갔다. 날카롭던 잔가지들이 사라지고 앙상한 뼈만 남은 것이다. 그래서 더욱 강렬한 형상이다. 악어와 싸우는 아나콘다처럼. 파릇한 보리밭위에서 나무는 아직 이집트 왕의 미라같이 영생을 꿈꾸고 있는 듯하다. 주검의 힘! 그곳에 가면 늘 생명을 기억하는 푸른 봄을 꿈꾸게 된다. 문득 답청踏靑이라는 민중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풀을 밟아라 들녘에 매 맞은 풀 맞을수록 시퍼런 봄이 온다 풀을 밟으면 밟을수록 푸른>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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