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지식사회 속에는 전문가들이 넘쳐난다. ‘학력 인플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반인들의 학력이 높아졌고,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이 정착될 정도로 배움의 기간도 길어졌으며, 분야를 초월한 ‘(무한) 스펙 쌓기’에 초등학생들까지 뛰어들고 있다.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즐기려는
또한 첨단 IT기술의 발달로 지식의 평준화/보편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세계 최고수준의 대학들조차 간판급 교수들의 강의 동영상과 수업자료들을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소위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전문가들의 삶 속에는 피로, 고통, 불만, 분노, 좌절이 가득해진다. 그 결과 그들은 변태적인 일탈을 꿈꾸는 범죄 시한폭탄이 되거나 생명력을 잃고 어슬렁대는 좀비(zombie) 같은 존재들이 되고 만다.
마니아, 애호가들은 자신의 관심분야 또는 대상에게 자발적, 적극적으로 몰입하며 커다란 희열을 느낀다. 자신의 관심분야 또는 대상을 지킬 수만 있다면, 아무리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도 기꺼이 감내한다. 결국 관심분야 또는 대상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그들의 삶을 전진시키는 핵심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은 자칫 과도한 경쟁이나 불합리한 다툼을 촉발하는 불씨가 되기도 한다.
반면 자신의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즐기려는 낭만주의자의 삶 속에는 기쁨과 만족, 감사와 행복이 가득하다. 자신의 처지가 주변 사람들보다 특별히 유리하거나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빈틈’들을 통해 새어 드는 참 생명의 기운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은 이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을 모두 보여주었다. 돈과 권력에 중독된 스포츠계는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행복감보다는 깊은 상처와 분노를 심기 일쑤였다.
게다가 ‘금메달 강박증’에 시달리던 대한민국 대표선수단은 국내외의 복잡한 사정까지 더해져 경기에 제대로 집중하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에 대하여, 많은 일본 언론들은 그녀가 마음대로 은퇴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일본빙상연맹과 그녀 가족의 주요한 밥줄이기 때문이다. 비록 아사다 마오 선수가 세계적인 선수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녀의 처지는 소위 ‘염전노예’의 삶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셈이다. 결국 올림픽은 ‘영혼 없는’ 전문 체육인들을 양산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이번 올림픽을 즐기는 선수들도 많이 보았다. 대표적인 예로 태국의 스키 대표선수로 등장한 세계적인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바네사 메이(Vanessa-Mae)’는 출전한 경기에서 꼴찌를 하고서도 마냥 즐거워했고, 김연아 선수 역시 석연찮은 은메달 앞에서도 활짝 웃는 ‘여왕의 고상한 기품’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올림픽 경기를 관전하던 전 세계의 수많은 시청자들과 언론들은 흥분한 마니아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낭만주의 삶속엔 기쁨과 행복 가득
그들에게 올림픽은 전 세계인들의 축제 한마당이 아닌, 선혈이 낭자한 전쟁터에 불과했다. 인생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식탁 위의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놓고도 뜨겁게 감격하며 행복을 맛볼 수가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전도서 3:13). 과연 당신은 인생을 즐기고 있는가?
김학중 꿈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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