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공안 순풍이든, 공안 역풍이든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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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짐은 지난해 9월부터다. 국정원이 국회로 들이닥쳤다. 현역 의원에게 적용한 죄명은 끔찍했다. 국헌을 문란케 하고 국토를 참절하려 했다는 내란음모였다. 국가가 한순간에 둘로 갈라졌다.

국가를 지키려는 세력과 국가를 뒤집으려는 세력, 헌법을 지키려는 세력과 헌법을 부정하는 세력, 북한을 배격하는 세력과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 사회가 이 극단의 분류 속에 하나의 선택을 강요했다. 이념의 중간지대 따윈 사라졌다.

지방 정가의 여당이 술렁댄 게 그때부터다. 재고 있던 인사들이 바빠졌다. 재판도 일사천리였다. RO 모임의 이적성이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법원 앞 보수집회가 갈수록 커졌다. 2월 17일, 법원이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6개월간 이어져 온 정국에 석고를 들이붓는 순간이었다. 안 그래도 고령화된 유권자들이다. 선거는 끝났다고 봐도 좋았다.

서로 다른 두 公安이

공안 사건으로 시작해 정치의 방향까지 틀어 버린 공안순풍(公安順風)이었다.

그러던 정국에 전혀 다른 공안이 등장했다. 그 시작은 중국에서 날아온 ‘간첩사건 증거 위조’라는 공문이었다. 많은 이들-특히 유우성은 간첩이라는 국정원 발표를 믿었던-이 비난을 유보했다. 이후 잠잠했던 20여일은 그런 ‘설마’가 배려한 휴지기였다.

그러다가 터졌다. 국정원 협조자가 목에 흉기를 그어 대며 자살을 기도했다. 그러면서 자식에게 충격적인 말을 남겼다. ‘국정원에서 가짜 서류 제작비 1천만원 받아라’.

검찰이 조사팀을 수사팀으로 바꿨다. 하루 뒤 국정원이 사과문을 발표했다. 또 하루 뒤 대통령이 유감 표명과 함께 철저한 수사를 천명했다. 그리고 반나절 뒤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했다. 침묵하던 보수 언론도 책임자 처벌을 쓰기 시작했다. 굳어진 듯 보이던 공안정국에 큼지막한 균열이 생겼다. 이 틈새를 놓칠 야권이 아니다. 연일 포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7개월만에 방향을 돌려 잡은 공안역풍(公安逆風)이다.

그러면서 바빠진 게 선거판의 ‘꾼’들이다. 각자의 셈법으로 득실을 따진다. 그리고 나름의 논리를 근거로 결론을 만들어낸다. 혹시 그 ‘꾼’이 여당 쪽 녹(祿)을 먹고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석기 내란 음모의 숙주 세력이 야당이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가 그 책임을 엄하게 물을 것이다”. 반대쪽에 있는 ‘꾼’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조작의 방조 세력이 여당이다. 유권자들이 절대 찍지 않을 것이다”.

하기야 이슈 없는 선거는 없었다. 지방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메뉴들이 있다. 정권 안정론과 정권 견제론이 있다. 대통령 공약의 실천과 파기를 두고 벌이는 논쟁도 있다. 인물론과 지역론도 있다. 이번에도 등장할 메뉴들이다.

물론 대상과 내용은 달라졌다. 이명박 견제에서 박근혜 견제로,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서 공천 폐지 공약으로, ○○도 출신에서 △△도 출신으로…. 그래도 유권자 귀엔 20년째 그 소리가 그 소리다.

돌아보면 다 부질없는 얘기다. 정권 안정된다고 내 동네가 좋아지나? 견제돼도 내 동네는 망하지 않는다. 대통령 공약과 싸울 게 지방 자치의 책임인가? 여의도 국회가 할 일이다. 타지 출신은 절대 못한다? 토박이가 말아 먹은 동네도 숱하게 많다.

모든 게 억지로 꿰맞춘 궤변이다. ‘꾼’들과 ‘꾼’들이 저희 좋자고 만들어 낸 정치 사술(詐術)이다. 그런데도 때만 되면 등장한다. 아마도 통한다고 확신하는 듯하다.

4개월 전 칼럼의 제목도 그랬다. ‘8개월 뒤 지방선거, 법원만 쳐다보다’(2013년 11월 7일자). 64 지방 선거가 두 건의 재판-국정원 댓글 사건ㆍ이석기 내란 사건-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그 중 하나인 이석기 사건이 징역 12년으로 1심을 마쳤다. 실제로 직후 판세는 새누리당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이 등장했다. 여(與)도 야(野)도 예상 못 한 굵직한 변수다.

지방 없는 지방선거로

그래서 걱정이다. 선거라야 83일 남았다. 정책을 얘기하고 후보를 얘기하기도 빠듯하다. 그런데 정국은 여전히 ‘공안’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 되레 더 격렬해져 간다.

선거 당일까지라도 끌고 갈 기세다. 이래저래 ‘지방 없는 지방 선거’의 몹쓸 데자뷔-공약 안 보고 찍고, 인물 안 보고 찍는-가 또 재연될 모양이다. 공안 순풍이 뭐기에. 공안 역풍이 뭐기에. 어차피 6월 5일 아침이면 철 지난 X-마스 캐럴처럼 썰렁해질 얘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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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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