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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현장체험] 인천시립무용단 남자무용수
사회 1일 현장체험

[1일 현장체험] 인천시립무용단 남자무용수

잠깐의 연습에 땀은 송골송골, 앓는 소리가 절로… 화려한 ‘주인공’의 꿈, 저멀리

웅장한 무대 위의 화려한 의상, 신명나는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그네들의 몸짓, 호소력을 듬뿍 담은 표정연기, 그동안 관람석에만 앉아서 바라보던 ‘무용수’의 모습이다.

몸짓으로 관객에게 내용을 전달하고, 감동을 이끌어내는 사명감을 가진 이들. 오늘 내가 체험할 직업은 바로 무용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몸짓은 그저 박수뿐, 자타공인 ‘몸치’인 나였다.

동료 기자들은 태권도를 전공했던 내게 “유연하니까 당연히 춤도 잘 추겠지”라는 응원을 보내며 기대감을 잔뜩 높였다. 큰일이었다. 나는 부드럽고 유연한 ‘무용’을 딱딱하고 박력 있는 ‘무술’로 바꿔버리는 사내였기 때문이다.

자연히 체험 하루 전 밤늦게까지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연방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괴롭혔다. 체험이 있는 날 아침, 무용을 전공한 아내마저도 그저 알 수 없는 미소만 보일 뿐이었다.

봄내음 가득한 3월 어느 날,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며 인천시립무용단 연습실로 향했다.

▲몸치 초보무용수의 입단기

“어디로 가야 하지?”

오전 9시30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시립무용단 연습이 10시부터 있어서 나름대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무대 뒤의 그네들은 어떠한 삶을 살고 있을까’라는 호기심이 밀려왔다. 누구나 한 번쯤은 화려한 ‘무용수’에 대한 환상을 가져 봤을 터.

그러나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건물 안은 생각보다 미로와 같이 복잡했다. 그동안 관람석으로 직행했던 터라 일반인의 발길이 드문 시립무용단 연습실을 찾는 데는 진땀을 빼야만 했다.

‘드디어 도착.’ 오늘 내 사수인 유봉주 단원(44)을 복도에서 만난 게 얼마나 반가웠던지. 연습실에 들어가기 전 미리 준비해온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으며, 사내 둘은 이야기꽃을 피웠다.

13년차인 유 단원은 학창시절부터 방송댄스에 소질이 있었다 한다. 그러나 군 제대 후 연구실에서 제품출하 실험연구원으로 무용수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문화센터에서 한국무용을 배우던 어머니의 권유로 늦은 나이에 무용학과 대학에 진학한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인천시립무용단과의 인연도 특이하다. 지난 1994년 인천예술회관이 개관할 때 구경하러 왔다가 고장 난 엘리베이터에 갇힌 일이 있단다. 함께 타고 있던 무용단원과 이야기하다 객원 무용수 오디션 정보를 얻고 늦깎이 무용수가 됐다.

“이제 들어가 볼까요?” 유 단원의 말이 떨어지자 내심 ‘내가 오늘 다리 한번 시원하게 찢어보겠구나’라는 걱정이 엄습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저마다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수많은 무용수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오후 2시부터 군부대와 학교, 노인회관 등을 직접 찾아 작은 공연을 펼치는 ‘찾아가는 공연’을 하는 날. 지난 1981년 창단해 33년 전통을 자랑하는 인천시립무용단 소속 단원들은 정기·기획 공연 이외에도 체험 프로그램, 찾아가는 공연을 통해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예술세계를 전달하고자 묵묵히 땀을 흘리고 있다. ‘창단 이후 77회 정기공연, 750여 차례 공연’이라는 경이로운 수치가 말해주듯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선 짙은 사명감이 서려 있다.

공연 당일인 만큼 혹여 무용수들이 예민해하진 않을까, 방해되는 건 아닐까 싶었던 우려는 “어서 오세요.”라는 단원들의 환영에 이내 사그라들었다. 게다가 내 사수는 오늘 공연이 없는 비번이다.

몸을 풀었다. 역시나 다리를 찢었다. 아름다운 여성 단원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자 아픈 기색조차 할 수 없었다.

모두 46명의 단원 중 남자 무용수는 8명에 불과하다. 오늘 내가 중점적으로 배울 동작은 남성의 춤인 ‘선무’다. 부채를 든 선비의 춤, 한량이 추는 춤이라 해서 ‘한량무’라고도 한다. 높이 조절과 무릎을 굽히고 걷는 방법. 보폭이 짧은 잔걸음에서부터 쉽게 말해 투스텝인 까치채 보법까지.

유 단원은 “한량스럽게 표현하는 데는 걸음걸이가 우선 뒷받침돼야 한다”며 “걷는 게 가장 어렵다. 걷는 연습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5분30여 초에 달하는 안무를 몇 시간 만에 다 외우기는 불가능했다. 앞서 음악에 맞춰 전체 안무를 시범 삼아 보여준 유 단원의 자태는 속도의 완급조절이며 감히 내가 쫓아갈 수조차 없는 다른 세상의 모습이었다. 부채를 활짝 펴는 방법도 크게 3가지로 나뉜다. 동작마다 정교함이 스며 있다.

같은 남자지만 유 단원의 모습은 기가 막혔다. 춤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고 시간 날 때마다 다른 무용단의 공연도 꼼꼼히 챙기면서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베테랑 무용수이면서도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는 그의 모습에 존경심마저 일었다. 잘생긴 외모에도 아직 미혼이라고 했다. 예술가는 고독하다고 했던가, 그는 프로였다.

▲전문 무용수와 함께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영광

멈춰 있는 자세를 얼핏 흉내만 내도 내겐 큰 성과였다. 한참을 걸음걸이와 부채 펴는 연습을 마친 뒤, 이내 자세 교정에 돌입했다. “마치 기합받는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나왔다.

‘무릎을 꼬아 붙인 꾸부정한 자세에서, 양팔을 활짝 편 뒤 따가운 햇볕을 부채로 가리는 모습’, 시키는 사람은 쉽게 말하는 데 따라야 하는 사람의 몸은 영 안 움직인다. 한 동작도 제대로 못 했는데 금세 ‘자세를 숙이고 양다리를 벌리면서 부채를 뿌리는 모습’을 하라는 주문이 들어온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가장 큰 난관은 ‘다리를 꼰 채 한쪽 팔은 앞으로 하고 부채를 편 다른 한쪽 팔은 뒷짐을 지는 모습’으로 동작을 연결하는 것. 땀이 비 오듯 났다. 글로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지만, 확실한 건 정말 힘들었다. 멈춘 자세에서 몸을 숙이고, 안 쓰는 근육과 관절을 사용하자니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일일이 자세를 잡아주는 유 단원의 이마에까지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성공이다. 제법 자세가 나온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듣자마자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유 단원이 갑자기 또 다른 연습실로 나를 이끈다. 시립무용단 연습실은 두 곳이다. 그는 색다른 경험을 할 좋은 기회라고 했다. 문을 열자, 남·여 무용수가 짝을 이뤄 연습이 한창이다. 공연 일부분을 장식하는 ‘야행’이라는 안무다. 밤으로의 여행이라는 주제를 담은 창작 한국무용으로, 모두 10명의 남·녀 무용수가 5팀으로 나뉘어 6분간 듀엣 공연을 펼친다.

입이 쩍 벌어지는 광경이 반복됐다. 붉은색 치마를 두른 여성 단원을 남성 단원이 밀치고 잡아당기는가 하면, 번쩍 들어 올리기도 한다.

내가 해 볼 차례란다. 마침 감기 탓에 오늘 연습에 참여하지 못한 남성 단원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아무리 상대 없이 홀로 연습하고 있는 여성 무용수를 아무런 기술이 없는 내가 들어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머쓱한 인사를 건넨 뒤, 이끌리듯 동화된다. 혹시나 파트너가 다칠까 봐 과격하고 어려운 안무는 피했지만, 전문 무용수들 한가운데 선 채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자체가 영광이었다.

이게 한국무용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던 차에 유 단원은 “시립무용단은 한국무용을 기반으로, 현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창작 작업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음만은 무대 위 주인공

무용장르는 통상 발레와 현대무용, 한국무용 등 3갈래로 구분된다. 인천시립무용단은 이 중에서 한국무용을 기반으로 현대무용과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다음 달 25일 펼쳐질 시립무용단의 정기공연작 ‘아라의 서(書)’가 그렇다. 서해를 향해 열려 있는 인천과 그 바다를 넘나드는 바람 같은 사람들의 역동적인 추상을 춤으로 그려낸다. 지난해 이 작품의 안무를 창작해 초연에 올린 김윤수 전 국립무용단 수석단원이 최근 인천시립무용단 신임 예술감독으로 선임돼 작품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한국무용의 재해석은 보는 이들에게 2배의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전부는 이해가 안 되더라도, 분명히 그들의 몸짓에는 감정과 이야기가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늘의 체험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어느덧 이들이 오늘 공연에 투입될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 무대 위 주인공이 되고픈 갈망을 갖고 살아간다. 직업체험인 만큼 공연까지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었지만, 일찌감치 포기했다. 수백 벌의 공연 의상이 보관된 의상실에서 자신의 것인 이몽룡의 복장을 한번 입어 볼 수 있게 해준 유 단원의 배려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확실한 건 이제 나는 관람석에서 공연을 보더라도 단순히 눈으로만 보며 건성건성 박수치지는 않을 듯하다. 비록 몸은 관람석에 있지만, 마음은 무대에 올라가 진심으로 그들과 호흡할 수 있게 됐다.

신동민기자 sdm84@kyeonggi.com

사진= 장용준기자 jy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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