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규제를 바라보고 대처하는 대통령과 정부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 ‘천송이 코트’가 언급된 이유인 액티브엑스 기술을 활용한 공인인증서 퇴출 문제는 수많은 언론과 시민단체,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이미 2013년 5월에 필자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발의를 통해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국민행복 위해 필요한 규제 있어야
민주주의는 이렇게 다양한 의견 수렴과 정당한 절차를 거쳐 확실한 검증을 통해 국민이 알 수 있는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이 이야기했고,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는 공인인증서 문제가 마치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해결되는 듯한 모양새는 적절치 못하다. 개별 사례마다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의한 밀어붙이기식 규제 개혁은 안 된다.
관료에게 대통령의 지시는 논리적인 합당한 판단에 우선한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각개 사안에 대한 지시는 무원칙을 양산할 뿐이다. 대통령이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지도자는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하고, 세부사항은 실무자에게 위임해야 한다.
대통령은 규제를 두고 ‘암 덩어리’, ‘원수’와 같은 거친 표현을 사용했다. 규제가 암 덩어리와 같고 절대 악이라면, 정부는 여태까지 악을 행한 것인가. 규제는 절대 악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의도는 ‘선’에 있다. 규제는 경제적 강자에 의한 시장실패를 수정하기 위해 공평성을 보장하여 약자를 보호하고, 시장의 효율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정부의 시장 간섭 수단이다. 규제를 통해 건강한 시장의 기초를 세워야 한다. 규제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의 책임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 경제민주화가 오늘날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은 기존의 ‘파이 키우기’ 식 성장론이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낙숫물 효과를 위한 대기업 밀어주기, 기업 민원 들어주기 식 규제개혁은 지양되어야 한다. 시장의 독점과 불공정을 규제해 경제양극화를 극복하고 건전하면서도 활발한 경제를 만들기 위한 규제 정책이 필요하다. 기업의 무분별하고 부당한 사익추구에 대한 민원 해결이 규제 개혁이 아니다. 기업의 주장에는 공공성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이를 지키기 위한 정부의 판단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튼튼한 경제와 모두 잘 사는 경제를 만들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규제 흐름은 탈규제가 아니다. 외부로는 2008년 금융위기, 내부로는 IT 규제 완화에 의한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사고가 지나친 규제 완화의 부작용이다. 탈규제의 부작용을 바로잡고 올바른 규제를 위한 재규제가 바른 방향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개혁을 논하면서 의원 입법 규제를 관리하여야 한다고 했다.
의원의 입법활동은 헌법에 따라 부여된 국회의 권한이다. 이런 입법부의 권한을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관리하겠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삼권분립의 원칙을 무시하고 헌법 위에 군림하겠다는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 원칙있는 규제정책 기대할 것
규제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규제의 질이 문제다. 규제가 아무리 많더라도 필요하다면 규제를 해야 한다. 숫자를 맞추는 데 필요한 규제를 없앨 수는 없다.
비정상적인 시장상황, 불건전한 경제활동과 싸우기 위한 무기가 규제다. 국민 행복을 위해 필요한 규제는 있어야 한다. 드라마와 ‘천송이 코트’는 유행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정책과 시스템은 유행이 아니다. 원칙 있는 규제 정책을 기대해본다.
이종걸 국회의원(민주ㆍ안양만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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