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은퇴하는 베이비부머, 선거로 돌아온다

Patient Protect Affodable Care Act(환자보호 및 부담적정보험법). 오바마 케어로 더 익숙하다. 민간 보험 중심의 미국 의료체계에 공적 개념을 도입한 제도다. 문제는 돈이었다. 정부가 분담해야 할 예산이 10년간 1조7천600억 달러에 달했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보아 넘길 리 없었다. 예산 통과를 무기로 틀어쥐었다. 세계 주식시장을 셧다운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 시작과 끝에 베이비부머(1945~1965년생)가 있다.

공화당이 ‘재정부담이 결국 베이비부머의 짐이 될 것’이라며 충동질했다. 여론이 악화됐고 사태는 셧다운까지 치달았다. 다시 ‘희망 없는 베이비부머들을 의료 공포로부터 해방시킬 제도’라는 역(逆) 반론이 돌았다. 여론이 급반전했고 오바마케어는 통과됐다. 악에 받친 베이비부머-46%가 무직이고, 17%는 깡통 주택에 살고, 20%는 병원비가 연체됐고, 14%는 의료 보험도 없는-가 뒤흔든 미국 정치의 최근 예(例)다.

한국에도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가 있다. 인구의 15%를 넘나드는 725만명이다. 젊은 시절 그들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주역이었다. 그 무한대 경쟁 속에서 개미처럼 일했다. 배움에 대한 한(恨)도 커서 자식에게 모든 걸 걸었다. 세계 유례가 없는 80%의 대학진학률, 기러기 아빠로 통칭되는 목숨 건 유학 열풍. 이 모든 게 그들이 만든 문화다. 한국의 베이비부머에게 젊은 날은 이렇듯 가혹한 노동의 역사였다.

그들이 은퇴하고 있다. 기업에서는 2012년을 전후해 쫓겨나기 시작했다. 1955년생을 시작으로 공직사회의 명퇴도 시작됐다. 하지만 짊어져야 할 책임은 그대로다. 여전히 자녀의 등록금과 결혼 비용을 책임져야 하고, 노부모의 생활비도 챙겨야 한다. 지나간 30년만큼이나 힘들 게 뻔한 30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저주받은 세대’ ‘끼인 세대’…. 스스로를 자조하며 내뱉는 이 표현보다 적절한 단어도 없다.

이런 그들의 분노가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2012년 18대 대선이 출발점이었다. 투표율이 82%에 달했다. 20대(68.5%) 30대(70%) 40대(75.6%)보다 높았고 심지어 60대 이상(80.9%)보다도 높았다. 3.6%의 박빙승부는 결국 50대 몰표에서 결판났다. 40대 시절 이미 선거를 쥐락펴락해본 경험을 갖고 있는 그들이다. 그때의 그 750만명이 그대로 50대로 옮겨갔다. 그리고 분노로 무장한 집단의 힘으로 다시 뭉쳤다.

그들의 표심을 종잡기는 어렵다. 산업화와 민주화 속에 뒤엉켜 살아온 그들이다. 어떤 망설임도 없이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 수 있는 특별한 유전자가 있다. ‘60대 이상=보수’, ‘20ㆍ30대=진보’와 같은 고정 잣대가 통하지 않는다. 18대 대선에서는 그 물꼬가 보수 쪽으로-朴 62.5%: 文 37.4%- 터졌다. 은퇴에 따른 소외감, 경제력 상실에 대한 불안감을 보듬을법한 구호로 ‘중산층 재건’을 택한 결과다.

이제 두 달 있으면 선거다. 이번에도 그들은 등장할 것이다. 한 번 맞본 정치 존재감에서 손 뗄 그들이 아니다. 여전히 높은 투표율로 선거판을 휘저을 것이다. 여기엔 1년전에 비해 0.3%p나 커진 50대 유권자의 비중도 있다. 휘두를 해머의 중량이 한층 묵직해진 것이다. 미국의 베이비부머가 2008년 백악관을 장악했던 것처럼. 이제 그것보다 10년 늦게 출발한 한국의 베이비부머도 한국 정치를 장악해 가고 있다.

한국 정치에 주어진 운명이다. 베이비부머 공략이 곧 선거전략이다. 그들을 잡아야 이긴다. 그들만의 복지, 그들만의 일자리, 그들만의 문화를 따로 떼어서 공약해야 한다. 아예 그들을 대표 주자로 내놓는 것도 방법이다. 누가 뭐래도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 온 공신(功臣) 세대다. 그럴만한 기여를 했고 그래도 좋을 권리를 갖고 있다.

표(票)에 대한 공포(恐怖)가 역겹다던 역사(歷史)에 대한 보은(報恩)으로 접근하더라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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