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부평지역을 선정한 것은 해안가에 가깝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이어서 은폐된 지형이라는 것과 밖으로는 철로와 연결됐기 때문으로 보여 진다. 조병창에서 제조된 병기를 산만 넘으면 곧바로 항구로 연결되고, 철길은 만주까지 연결이 가능한 지리적 조건이 일본을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부평, 중일ㆍ태평양전쟁때 군수기지
이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에게는 엄청난 군수물자가 필요했다. 특히 일본 본토는 미공군기들의 공격 대상에 들어가기 때문에 한반도에 군수기지를 건설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 계획에 의해 부평지역이 선정되고, 부평지역 전체를 조병창 시설로 확장하기 위해 일제는 해당지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을 강제로 쫒아내고 그 자리에 조병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후 부평지역의 조병창은 중일전쟁에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장 많은 군수물자를 필요로 하는 태평양 전쟁에도 군수물자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2013년 9월 16일, 캠프마켓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 인천시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했는데, 기자회견의 핵심적인 내용은 지하터널의 존재였다. 즉 캠프마켓에는 지하터널이 존재하며 폭과 넓이가 각 2m 정도 되고 바닥에는 철도레일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하터널은 캠프마켓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영공원에도 존재하고, 부평공원에도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이 때문에 필자가 부영공원의 지하터널의 확인에 나섰다. 부평구청에서 대략적인 위치 이야기만 듣고 찾아 낸 지하터널의 입구는 완전히 봉해져 있었다. 처음에는 지하터널 입구인지도 몰랐을 정도였다. 마치 건물의 콘크리트 토대로 보였다. 주변을 모두 찾아도 비슷한 흔적이 보이지 않아 지하터널은 소문이었거나, 입구가 완전히 흙으로 덮여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건물의 토대처럼 보이는 콘크리트 구조물의 측면에서 지하터널 입구의 비가림막을 설치한 흔적을 찾아냄으로써 지하터널의 입구를 찾아냈다.
이런 지하터널이 건설된 것은 미국과 중국의 공군기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감이 주원인으로 보인다. 지하터널을 이용해서 인천항까지 군수물자를 운송하고자 했던 것 아닌가 싶다. 이 계획에 의해 지하터널 건설작업은 이루어 졌으나 물자 운송이 실행됐는지는 현재 확인되지 않고 있다.
현재, 부영공원은 환경오염 정화처리를 준비 중에 있다. 그러나 일정 넓이 이상(1만㎡)일 경우 반드시 문화재유물 조사를 하도록 돼 있다. 이 법령에 의해 문화재청은 부영공원의 환경오염 정화처리 전에 문화재유물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이로 인해 환경오염 정화처리는 중단되고 문화재유물 조사 작업이 준비되고 있다.
소문으로만 돌던 지하터널이 최종 확인된다면 일본제국주의의 끝없는 욕망의 상징이 될 것이다. 비록 그 시설이 과거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물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아픈 역사를 상징하는 유물로서 귀중한 역사교훈의 자료로 충분하다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설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보호하되 우리 역사의 교훈 및 교육 자료로 삼아야 한다.
문화재유물 조사 작업서 확인해야
어떤 용도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전문가 의견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시민 다수가 이 상징물의 활용방안에 대해 의견들을 제시할 수 있는 참여창구를 만들면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인천시나 각 구청의 홈페이지를 통해 의견들을 제시하면 문장이 틀려도 키워드가 비슷하다면 같은 의견으로 정리하고 그 숫자들을 나열한다면 어떤 방안이 가장 많은 의견으로 나타나는지를 시민들 스스로 알 것이다.
이처럼 우리 아픈 역사의 상징이 될 수도 있는 근대유산이 시민들의 참여로 역사의 아픈상처가 새로운 미래가치를 상징하는 문화유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곽경전 부평미군부대 시민참여협의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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