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홍성석의 탐라별곡

엊그제 13일은 임시정부수립일이었다고 하네요. 1919년 4월 13일의 일이었으니 95주년이 된 셈이죠. 한 번쯤, 이렇게 문득 우리 중 누구라도 기억해야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굴러갈 것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15일의 아침은 프랑스의 작가 장 주네가 일흔 다섯의 생을 마친 날이기도 합니다. 절도죄로 소년원 수용, 탈주, 방랑, 남창, 거지, 마약 밀수범으로 전전했던 그의 삶은 고스란히 작품에 녹아들었어요. 20년 전 나는, 그의 『도둑일기』와 희곡 『하녀들』을 흥분해서 읽곤 했습니다.

장 주네의 문체에서 뜨거운 생의 활력과 그림자를 보았다면 나는 동일하게 홍성석의 ‘탐라별곡’을 보았던 순간을 떠올려요. 2007년 무렵이었을 거에요. 제주의 그의 작업실은 과거현재미래를 구분하지 않고 휘황찬란하게 빛나던 색으로 만발이었지요. 제주 신화, 역사, 자연이 거대한 뿌리, 거대한 우주로 빛나고 있었으니까요.

그의 작품들에는 한라산의 머리였다는 산방산을 비롯해 머리 없는 두무악(頭無嶽)이 덩실거리고 일출봉이 삐죽 솟아 있으며 그 주변으로 노루, 개, 고양이, 뱀, 새, 사슴이 어슬렁거리며, 방사탑, 관덕정, 삼성혈, 용두암, 고사리, 밝은 꽃들이 만발해 있어요.

그럼 이 작품 ‘탐라별곡’을 살펴볼까요? 태평양의 푸른 바다 빛 코발트블루(cobalt blue)를 바탕으로 검은 줄기가 생(生)을 틔웠네요. 혹시 거믄오름을 아세요? 숲이 무성해서 검게 보이니 ‘거믄’이란 말을 썼다고도 하고 신(神)을 뜻하는 ‘검’에서 ‘거믄’을 가져왔다고도 해요. 그러니 ‘검은 줄기’는 단순히 시커먼 줄기가 아니라 신성한 숲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어요.

그 검은 줄기를 붉은 껍질이 감싸고 있어요. 검은 줄기가 신성한 숲이라면 붉은 껍질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숲의 생명일 것입니다. 우리 몸의 혈관처럼 말이죠. 나무처럼 보이는 이 숲의 가지들마다 노란 씨알들이 달렸네요. 숲의 씨알생명들이 응결되어서 밝게 빛나고 있는 것이 아닐는지요.

여기서 우린 홍성석 작품세계에 대한 하나의 핵심을 간파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의 미학적 상상력은 나무이며 또한 나무의 상상력이라는 것을 말예요. 상상력은 이 나무가 가진 통합적 덕목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가 뿌리이고 가지라는 것이죠. 아마도 이 나무는 신목으로서 우주목(宇宙木)일 것입니다.

상상력은 이렇듯 대지와 하늘 사이, 대지와 바람 사이에서 살 것입니다. 이 나무의 가지 사이사이에서 몰아일체의 생명들이 활기를 내뿜으며 활보하고 있는 것이죠. 95년 전 상해에 모인 꿈 많은 청년들의 독립정신이 되찾고자 했던 것은 그런 게 아니었을까요? 절망의 나락에서 자신을 구원한 장 주네의 꿈도 그렇구요.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문화재단 정책개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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