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1분이라도 빨리 떠나야 할 장관들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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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를 불안감, 그것은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었을까. 언제부터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 아마 행정안전부가 안전행정부로 바뀐 그 언저리부터였을 게다. 결국 그 불안감이 세기의 참변(慘變)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모두가 알게 됐다. 맘을 떠나지 않고 매달려 있던 불안감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책임 지지 않는 정부, 책임 대신 엄벌의 칼자루를 휘둘러 온 정부가 이유였다.

작년 7월 우리에겐 첫 경고가 내려졌다. 생때같던 고등학생 5명이 목숨을 잃었다. 해병대 캠프에 간다며 집을 나섰던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수영하라며 밀어 넣어진 태안 앞바다 갯골에서 참변을 당했다. 무자격자로 엉망진창이던 캠프가 저지른 짓이다. 현장에 있던 훈련 교관 등 3명이 구속됐다.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 교장도 사퇴했다. 하지만 책임은 그걸로 끝이었다. 정부는 ‘책임자 엄벌’만을 강조했다.

참사… 참사… 참사

두 번째 경고는 더 컸고 더 참혹했다. 올 2월 경주의 리조트가 무너져 내렸다. 부산외대 대학생 10명이 숨지고 204명이 다쳤다. 대학 생활의 꿈도 펴보지 못한 신입생들이다. 부실 자재, 부실 감리, 관리 소홀이 빚은 참사였다. 6명이 구속되는 등 21명이 기소됐다. 대학 측은 학생회 주관 행사였다면 일찌감치 빠졌다. 여기서도 정부의 역할은 빼다 박은 듯 똑같았다. ‘책임자를 찾아 엄벌하겠습니다’.

세상에 슬프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부모에 앞서 가는 자식들을 지켜보는 것처럼 가슴 메어지는 일도 없다. 반년의 차이를 두고 그런 사고가 생겼고, 모든 이의 가슴을 찢어지게 만들었다. 그 두 번 모두 정부는 ‘책임자 엄벌’만을 말하고 있었다. 책임지겠다는 장관도 없었고, 책임졌다는 장관도 없었다.

결국 참담한 세 번째 결과가 왔다. 바다 위에서 배가 뒤집혔고 300여명이 실종 또는 사망했다. 이번에도 고등학생들이다. 학창 시절 추억을 꿈꾸며 제주도로 향하던 중이었다. 선장이 운전을 잘 못했다고 한다. 그래놓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먼저 탈출했다고 한다. 그 뒤로 구명조끼도 못 입은 아이들, 안내에 따라 침대에 누워 있던 아이들, 친구를 구하려던 아이들이 남겨졌고, 모두 실종됐다.

악몽(惡夢)이다. 7일째 계속되고 있다. 이 악몽 속에서 대한민국이 울고 있다. 공룡처럼 드러누워 버린 뱃머리를 보면서 사흘을 울었고, 그마저 사라져 버린 텅 빈 바다를 보면서 나흘째 울고 있다. 그렇게 울부짖는 국민들이 정부를 바라봤다. 1초라도 빨리 캄캄한 바다 속으로 들어가 찾아 주기를 바랐다. 이럴 때 나서야 하는 게 정부라고 봐서였다. 이 악몽을 깨워줄 힘은 정부밖에 없다고 믿어서였다.

그런데 정부가 국민을 몸서리치게 했다. 탑승자 몇 명인지 알아내는데 며칠씩 걸렸다. 실종자가 100명뿐이라고 발표했다가 290명으로 고쳤다. 선실에 진입해 공기를 주입하고 있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 대형 부표를 배에 다는 데 사흘이나 걸렸다. 시야가 안 좋다며 조명탄 투하도 질질 끌었다. 그 사이 희망처럼 떠 있던 선수(船首)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게 안전을 책임진다는 정부의 7일간 행적이다.

이후 아비규환이 됐고 뒤죽박죽이 됐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정부는 역할도 못했고 책임도 못했다. 장관들은 위기에 무능했고 국민을 좌절시켰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안행부 장관, 부적절한 촬영을 시도했던 어떤 장관, 발인식 찾아 신분 소개받으려던 또 다른 장관…. 모두 신뢰를 잃었다. 이제 이 생지옥 속에서 그들에게 남겨진 역할은 없다. 분노한 가족들도 그들을 생략한 채 청와대로 가려고 한다.

누가 누구를 엄벌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자 엄벌’을 얘기했다.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의 행태에 대해 “살인과도 같은 행위”라고 비판했다.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합동수사본부장도 검사장급으로 확대됐다. 이제 참변에 상응하는 사법처리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법이 처벌 가능한 가장 강력한 조치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그건 법전(法典)을 달달 외우는 수사관들이 할 일이다.

‘윤리적 책임’은 그것과 다르다. 법전에 나오지 않는 죄다. 죽어가는 국민을 7일 동안 쳐다만 본 죄, 국민의 희망을 바다 밑으로 가라앉힌 죄, 상처 난 가족의 가슴에 난도질한 죄다. 모두 대통령이 결심하고 물어야 할 죄다. ‘책임자를 엄벌하겠습니다’라고 약속한 대통령. 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 ‘그런 책임자’들이 앉아 있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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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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