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매듭, 과거와 현재를 잇다

올 봄엔 꽃들이 순서를 무시하고 다투어 얼굴을 내미니 글자 그대로 백화제방(百花齊放)이었다. 4월 하순도 되기 전 철쭉이 박물관 뜨락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봄 처녀가 머뭇거릴 틈도 없이 이어 여름 아씨가 잰걸음으로 다가온다. 어둡고 칙칙하며 무거운 무채색 공간은 하루가 다르게 생명의 색 초록으로 변한다. 눈만이 아닌 마음과 가슴까지 풋풋한 싱그러움이 스며들어 생명의 약동을 절감하게 한다.

올 들어 새봄 맞아 경기도박물관에서 개최한 첫 테마전은 기증실에서 펼친 ‘매듭, 과거와 현재를 잇다’(2014.3.20~4.15)였다. 여인의 손끝에서 다양한 꽃으로 피어난 매듭을 모은 것으로 전시를 일요일 아닌 지난 화요일 조용히 막을 내렸다.

이 전시는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지난해 초대전으로 연 ‘일상을 위한 매듭, 전통의 응용과 창작’(2013.11.26~2014.2.23)을 우리 박물관이 유치한 것이다. 제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나 우리 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유물을 다수 포함시키는 등 제주와는 차별을 꾀했다.

유소가 달린 옛 장황을 유지한 족자로 화면 내 매듭이 있는 여러 선현의 초상, 우리 지역 명문가의 음택(陰宅)에서 출토된 유물들, 우리 선조들의 체취와 할머니의 따사로운 손길이 감지되는 전세품 등을 두루 포함한 ‘아주 오래된 매듭 이야기’등을 새로 첨가했다.

시기를 현대에서 300년 이상 끌어 올려 비록 퇴색했으나 고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유물들은 특별전의 격조를 더했다. 마치 잘 리메이크된 음악처럼 결과적으론 청출어람(靑出於藍)을 이룬 것으로 평가됐다.

길고 오랜 역사를 통해 다채로운 모습으로 발전한 전통 매듭에, 이에 바탕을 두어 새롭게 창작된 것 등 여섯 갈래 소주제로 나눴다. 옷과 함께하다·나를 표현하다·실용품에 예술을 담다·아주 오래된 매듭 이야기·아름다운 실내장식·전통 매듭의 재창조로 분류해 펼쳤다.

매듭은 다양한 형태에 화려함과 정교함 나아가 품위와 격조 및 멋을 함축하고 있다. 거주공간과 의상 및 휴대품 등 실생활 공간을 두루 점한 매듭은 과거만이 아닌 현대인의 삶에서도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조선시대 풍속화의 단초를 연 관아재 조영석(趙榮·1686~1761)은 시서화 삼절로 산수와 인물에 능했다. 조영석이 영춘으로 귀양 간 맏형을 그린 보물 제1298호 ‘조영복초상’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문인화가 그린 흔치 않은 초상인 점에서도 주목된다.

이 초상에 그려진 홍색 허리띠(세조대)는 한국매듭연구회 김혜순 회장이 복원해 진열장 초상화 아래 놓여졌다. 이 세조대는 24가닥의 실을 꼬아 안에 금박을 넣은 것으로 길이가 396㎝에 이른다. 세조대는 1품에서 3품은 홍색이며 4품에서 9품은 청색인데 옷을 여미는 기능과 더불어 의상에 멋을 더함을 엿볼 수 있다.

심익창(沈益昌·1652~1725)은 과거시험 부정과 영조의 왕세자(연잉군) 시절 독살사건에 연관되어 그의 손자인 심사정이 평생 화가의 길을 걷는 단초를 제공했다. 경기도박물관에선 2008년 봄(4.21~6.5) 49일간 파주에 위치한 심지원(沈之源·1593~1662) 등 18기에 분묘를 발굴조사 했다. 이 중 7기에서 복식유물이 160여 건 출토되었다.

심지원의 4남 심익창 묘에선 단령과, 14세에 시집와 21세에 타계한 익창의 첫 부인 성산이씨(1651~1671)의 직금봉황문 스란치마와 주머니들(조낭·두발낭·향낭·진주낭)과 동반유물인 가지와 용머리 장식 노리개 등이, 두 번째 부인 사천목씨(1657~1699)의 원삼 등이 출토되었다.

이번 전시는 박물관이 콘텐츠의 보고(寶庫)임을 웅변한다. 전시가 막을 내리자 복식유물이 적지 않은 우리 박물관에 김희진 매듭장과 김혜순 회장은 각기 대표작인 ‘고목에 핀 매듭’과 ‘즐거움’을 흔쾌히 기증하셨다.

이원복 경기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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