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딸이 비행기에서 “엄마. 지금 비행기가 납치당해서 엄마의 얼굴을 앞으로 볼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엄마의 딸로 태어나서 행복했어.
엄마 사랑해”라고 남겼고, 34살 된 남자는 “여보. 지금 위급상황이오, 비행기테러로 당신과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소.
세상 어떤 어려움도 지켜내려는 부모
내 인생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소. 앞으로 당신과 아이들이 어떠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의견을 존중할 것이오. 사랑하오”라고 문자를 남기고 떠나갔다. 2003년 대구 지하철이 화염에 휩싸여 죽어가던 학생들이 한결같이 “엄마, 미안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라고 말을 남겼다.
이번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에서 어린 학생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쓴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가 “엄마 내가 말 못 할까봐 보내 놓는다. 사랑해”라는 내용이었다. 캄캄한 바닷속, 문자도 터지지 않는 차오르는 물속에서 두렵게 떠는 우리 아이들은 누구를 목 놓아 부르며 찾았을까? 그건 물어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모두가 가족들을 찾는 목소리였을 것이다.
“아빠.... 내가 미안해, 엄마.... 투정부려 미안해, 오빠.... 사랑해,
잘못한 거 용서해 줘,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억울하고 원통하게 세상을 떠나간 어린 생명들에게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다. 편안하고 안전하게 뛰어 놀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안전한 내일을 준비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 죽어가면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찾으며 울부짖고, 살아서 죽어간 자식들을 위해 오열하는 것이 부모요, 가족들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먼저 만나는 사람은 어머니이다.
나를 뱃속에 열 달 동안 품어주시고 온갖 정성으로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시고 내가 세상에 적응하도록 먹이시고 입히시고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시며 길러주신 이런 어머니와 나를 감싸 주시며 세상에 어떤 어려움에서도 지켜내시려고 두 손을 불끈 쥐며 싸움터로 나가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언제나 묵묵히 나를 바라보시며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시고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시는 가정의 울타리요, 지킴이시다.
이런 부모님 밑에 하나, 둘, 셋 자녀들이 태어나서 형제(兄弟)가 생기고, 자매(姉妹)가와 남매(男妹)가 생긴다. 이러한 자식들은 부모들의 희망이며 삶의 가치이고 존재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자식들은 성장하고 부모는 늙고 병들며 새로운 생명으로 손주가 태어난다.
이러한 희망의 탄생은 또한 인간에게 죽음을 생각하게 만들고 죽음을 통해 또 다른 탄생의 문이 열린다. 꽃이 피고 지듯이, 밀물과 썰물이 있듯이 태어나면 죽는다는 당연한 이치를 알면서도 죽음이라는 이별은 탄생이라는 만남보다 힘들고 어렵다.
가정은 인간 실존의 원초적 공동체
이렇게 가정은 생(生)ㆍ로(老)ㆍ병(病)ㆍ사(死)가 존재하며 이별과 만남의 장(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은 기쁨이 존재하고 슬픔이 함께하는 인간 실존의 양식이 배여 있는 원초적 공동체이다. 그래서 내가 죽으면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가족이며 나를 위해 걱정하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가족인 것이다.
가족은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하는 공기 같은 존재이며 가족은 아파야 존재를 깨닫는 상처 같은 존재이다. 부활절을 지내면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우리 어린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이 어린 생명들의 ‘내일’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같은 하늘아래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을 위해 사랑으로 배려하고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어른답게 책임을 다합시다.
송영오 신부ㆍ천주교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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