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성불하시기 전에 아주 오랜 과거로부터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부모였다고 하시는 것이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길을 가다가 길가의 뼈 무덤에 절을 하신다. 과거 전생에 나의 부모 형제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하시는 것이다. 지구상의 어떤 학문과 가르침도 이렇게 거룩하고 진리적이며 아름다운 모습은 달리 어디에도 볼 수 없을 것이다.
효는 일방적 아닌 상호 호혜적 가치
용주사는 정조대왕께서 ‘부모은중경’을 간행해 전국에 보급한 효의 사찰이다. 그리하여 특히 ‘효’와 연관성이 깊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효를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왔다.
신라시대에는 효경이 유학의 제일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졌다. 효는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도 중시되어 왔으며 오히려 지금의 시대에는 더욱 더 새로운 가치로 되살아나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만큼 지금의 시대는 혼란과 몰가치에 처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겠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조선시대에는 효의 가치에 대한 대단히 큰 오류가 있었다. 인간 내면의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으로써의 효의 가치를 이어온 것이 아니라 여러 이유에서 군신관계에 있어 일방적 충성으로 변질된 면이 많다는 것이다.
부모 자식과의 효는 군신간의 충(忠)의 한 방편적 의미로 되었으며 군신간의 충(忠)을 실현시키기 위한 의도로써 가정 내에서의 부자의 효를 강조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본래 이 효(孝)의 가치는 인류의 보편적인 삶의 지혜의 가치이며 상호적이고 호혜적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생활철학이다. 효는 일방적이지 않으며 보편적, 쌍방적 상호호혜적 가치인 것이다.
유학의 중요가르침인 ‘예기’의 예문편에 다음의 구절이 있다. “무엇이 사람의 의로움인가? 아버지가 자애로울 때 자식은 효성스럽게 되고, 형이 착할 때 동생은 형을 따르고, 남편이 의로울 때 부인은 남편의 말을 듣게 되고, 어른이 은혜를 베풀 때 어린 사람은 순종하게 되고, 임금이 인仁할 때 신하는 충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 열 가지의 상호 쌍방적 관계를 일컬어 사람의 의로움이라고 한다.” 불교에서의 효의 의미는 본래 큰 자비심을 가지고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해 주는 것이다. 일체 중생을 남김없이 모두 행복한 해탈세계로 인도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출가 수행자들도 표면적으로는 일시적으로 부모를 떠나 불효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모든 사람들을 행복의 공덕세계로 인도해 주는 큰 효(大孝)를 행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십대제자의 한 분인 목련존자가 수행의 공덕으로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천도해 드린 것도 하나의 큰 효의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자비연꽃 향기 가득한 세상되길…
불교에서는 일반적으로 ‘보리를 구하여 수행하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한다. 이 보살은 모든 중생에게 자기의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베푸는 삶을 살아간다. 이 땅의 보살들은 온갖 어려움과 고난에 처한 이들을 구제하시는 대자비의 관세음보살님께 이렇게 합장하고 발원한다.
“‘억울한 백성이 없는 세상’을 이루고자 했던 정조대왕의 꿈이 어려 있는 이 땅에 큰 자비와 지혜를 베푸시어 기본이 바로서고 공정하고 안전한 나라가 되도록 하여 주소서. 우리 사는 바로 이 세상이 아름다운 자비연꽃의 향기로 가득하게 하소서. 나누고 함께하면 행복한 세상이 되도록 불퇴전의 노력으로 정진해 나갈 것을 서원합니다. 이번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을 낱낱이 살피시어 모두 다 해탈의 생명, 공덕의 생명이 되도록 이끌어주소서!”
인해 스님•용주사 문화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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