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논단] 여기서 살면, 여기 사람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삶을 살다보니 기대 이상의 일을 이룰 때도 있어서 행복한 미소를 짓다가도 이내 스스로 그 미소를 애써 달래면서 감추기까지 한다. 누구라도 같은 마음이며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대한민국은 모두가 한 가족’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번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 과거에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한 가족이라고 확신했었는데, 지금은 국가가 아닌 누구라도 여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로 우리는 출신국과 민족을 불문하고 한 가족이라는 것이다.

매년 45월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아주 반가운 때이다. 대부분의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그러하듯이 필자가 섬기고 있는 센터에 출석하는 필리피노 분들에게도 겨울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계절이다.

대한민국호에 승선한 사람 모두 한가족

혹독한 겨울을 잘 버텨내고 맞이하는 34월 봄철엔 집안 청소와 무거운 솜이불부터 시작하여 두터운 겨울옷들을 빨래도하면서 봄단장을 한다. 그리고는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45월엔 소풍을 계획하곤 한다. 하지만 웬일인지 필리피노공동체에서는 이번 소풍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누구 한사람도 물어보는 사람이 없다.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대신에 센터 직원들에게 묻는다. “혹시 오늘은 몇 사람이라도 구조가 되었어요?”, “한 명이라도 구조가 되면 좋겠어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돕고 싶어요.”

올해는 특별히 서울투어를 계획하고 있었던 터라 기대가 더 컸을 터인데 그런 것들은 이미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사실 이주노동자들의 이런 모습은 전에도 몇 번 쯤은 봐왔던 일이긴 하다. 한국과 다른 나라의 축구경기를 할 때면 보통 저녁 8시에 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퇴근해서 저녁을 먹는 시간인데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TV를 통해서 열렬히 한국을 응원한다. 하지만 이번 일은 분위기나 내용이 사뭇 다르다. 이분들의 얼굴에서 한국인들 못지않은 아픔을 느낀다. TV 보도를 지켜보는 이분들의 눈시울은 이미 젖어있다.

그렇다. 그가 누구든 간에 여기서 살고 있으면 여기 사람인 것이다. 그가 누구든 간에 여기서 일하고 있으면 여기 노동자인 것이다. 결국 여기 대한민국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한 우리는 같은 구성원이며 공동체인 것이다.

필자도 다른 어떤 나라보다 필리핀을 자주 가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누군가 필리핀에 대하여 나쁜 말은 하면 그 사람에게 항변을 할 정도로 필리핀에 대한 애정이 있는데 하물며 이 나라에서 가장 소중한 젊음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랴!

세계 경제대국을 지향하고 있는 대한민국호는 반드시 목적지 항구를 향해서 순항해야 한다. 그러려면 큰마음으로 끼리끼리라는 소인배적인 구습 내지는 악습을 벗어 던져 버려야 한다. 지역과 혈통과 피부색을 초월하여 여기 대한민국호에 승선한 모든 사람들이 한 가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항해를 해야만 한다.

이유야 무엇이든 이주민들은 이미 그런 마음의 준비가 갖춰져 있다. 문제는 우리 선주민이다. 받아들이자. 그리고 함께 가자. 수많은 파도와 싸우며, 수없는 암초들을 피하여 안전한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위치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 누구라도 믿어주고 지원해주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지역ㆍ피부색 초월, 믿어주고 격려해줘야

150만 명의 이주민들은 대한민국호가 꼭 필요로 하는 위치에서 땀 흘리며 자신들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서 순항에 박수를 보내며 함께 기뻐하며 보람을 느끼고 있다.그런가하면 시련의 파도와 암초를 만났을 때에는 승선한 선주민들과 전혀 다르지 않게 함께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있다.

이주민들과 선주민의 구분이 없는 대한민국호의 출항은 경제대국, 행복대국항을 향해 순탄한 항해를 해나갈 것이다.

김철수 목사ㆍ사랑마을이주민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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