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당신의 한표, ‘18세 그 애들’에겐 恨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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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경기표심이 안갯속이다. 마지막 여론조사에서의 부동표는 30%였다. 전라도나 경상도의 부동표보다 많다. 같은 수도권인 서울 인천의 20%보다도 많다. 30ㆍ31일에 실시된 사전 투표율은 낮았다. 전국 평균은 11.49%인데 경기도는 10.31%다. 서울(11.14%)ㆍ인천(11.33%)보다도 낮다. 경기도민의 표심이 지금 이렇다. 말하지도 않고 있고, 결정하지도 않은 듯 보이고, 투표장으로 갈 생각도 없어 보인다.

전국과 다르고, 수도권에서도 특별하니 예삿일은 아니다. 혹시 이런 때문은 아닐까. 세월호 참사는 경기도민의 참사다. 그 학교-단원고-가 경기도에 있다. 분향소-안산-가 경기도에 있고, 장례식장-수원-이 경기도에 있다. 전화기를 붙들고 표심을 털어놓을 심정이 아니다. 유세장 쫓아다니며 박수치고 환호할 마음이 아니다. 미리부터 찾아가 투표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많은 도민의 속이 그렇다.

그래서 늘어난 부동표라면 봐줄 수 있다. 그래서 낮아진 사전 투표율이라면 봐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투표권마저 포기하겠다면 그건 봐주기 어렵다.

희생된 애들이 고등학교 2학년이다. 하필 열여덟이다. 1년여 뒤면 선거 공보물을 받았을 애들이다. 처음 받은 책자를 뒤적이며 신기해했을 애들이다. 그러면서 어른 됐음에 뿌듯해했을 애들이다. 과거 어느 땐가 우리가 겪었던 신기하고 뿌듯했던 추억이다. 이렇듯 평범하고 별것 아닌 추억이 그 애들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성인(成人) 자격을 1년여 앞두고 세상에서 사라졌다. 19세로 가지 못한 한(恨)이다.

많은 이들이 세월호 참사에 분노했다. 여객선을 침몰시킨 해운사와 관(官)의 유착에 분노했다. 모두를 살릴 수 있었음에도 배에 진입하지 않은 해경에 분노했다. 구조자 통계조차 틀려 유가족을 두 번 울린 정부 무능에 분노했다. 그렇게 분노한 도민들이 분향소를 찾고, 길거리로 나오고, 촛불을 들었다. 이제 그들이 찾아야 하는 곳은 투표장이다. 투표에 참여해 분노의 도장을 찍고 슬픔의 도장을 찍어야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세월호 분노’에 분노했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에 분노했다. 대책 없이 트집 잡기에만 매달리는 세력에 분노했다. 촛불을 비집고 들어가 정부 타도를 외치는 집단에 분노했다. 그렇게 분노한 도민들이 유언비어에 맞서고, 댓글로 호소하고, 맞집회로 버텨왔다. 이들이 찾아야 할 곳도 투표장이다. 투표에 참여해 세월호의 정치적 이용을 경계하고, 그런 세력과 집단을 반대해야 한다.

6ㆍ4 선거는 세월호 선거다. 그리고 그 세월호 선거가 국론을 갈라놨다. 네거티브를 지나 증오의 단계로 넘어갔다. 함께 슬퍼해야 할 세월호인데 칼날 시퍼런 비수를 휘두르며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내고 있다. 6월 4일 투표장은 그 충돌의 끝단을 보여주는 혈투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는 더 중요하다. ‘유권자는 싫어하는 후보의 낙선을 위해 투표장으로 간다’(박성민 著ㆍ‘선거 어떻게 이길 것인가’중에서).

잘 익은 감자는 불구덩이에서 그것을 꺼낸 자의 것이라 했다. 민주주의 열매도 치열한 선거판에서 표를 찍고 나온 유권자의 것이다. 투표권을 버린 유권자는 어떤 열매에도 입을 벌릴 자격이 없다. 하물며 투표도 못 해보고 죽어간 애들을 기억하는 선거다. 진정 어른임이 미안하다면 투표장으로 가야 한다. 어른들이 귀찮다며, 바쁘다며 포기하려는 그 한 표. 그 한 표가 ‘애들’에겐 꿈에도 기다리던 ‘어른’의 징표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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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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