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논단] 6ㆍ10과 87년 체제

몇 년 전부터 87년 체제라는 말이 자주 인용되고 있다. 87년 체제라는 의미는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된 개념을 토대로 한다. 특히 87년 체제의 출발점을 6월 항쟁 또는 6·10 항쟁으로 말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법철학자인 로드 액턴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는 말을 남겼다.

총칼로 권력을 장악하고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선출하는 괴기한 체제가 유지되는 가운데 전두환 정권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부패가 만연한 사회였다. 억눌린 침묵의 체제 속에서 젊은 청년을 중심으로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민주 대 반민주’ 대립구도 논란 일어

이런 와중에 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끝에 죽음을 당했다. 이때 중앙대부속병원 의사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용기 있는 증언으로 박종철의 억울한 죽음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저항운동은 27년 전 6월10일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이날은 당시 여당인 민정당이 대선 후보 선출 전당대회 날이었다. 이날 민정당은 노태우 전 체육부 장관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그러나 축제 분위기가 돼야 할 민정당 전당대회는 민주주의를 외치는 데모대와 경찰의 충돌로 서울시 중심가는 최루가스로 덮였다. 이때 청년 학생들의 데모에 동참하기 시작한 새로운 세력이 넥타이 부대라고 부르는 30~40대 직장인들이었다. 서울 중심가에서 벌어진 청년 학생들의 데모에 직장인들의 참여는 북한의 지령을 받는 좌익용공세력의 반국가 행동으로만 알고 있었던 일반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결국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면서 노태우는 6월29일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72년 유신헌법이 탄생하면서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선거인단을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선제가 도입된 지 15년 만인 87년 12월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게 됐다. 비록 양 김의 단일화 실패로 민주세력으로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지 못했지만 헌법적 가치가 정치권력에 의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87년 체제를 넘어 서자고 하는 그룹과 아직 시기상조라는 그룹의 담론이 존재한다. 87년 체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민주 대 반민주라는 대립된 개념이 가장 큰 담론을 구성하고 있다.

그래서 87년 체제를 넘어 서자고 하는 그룹은 대립적인 민주 대 반민주라는 구도를 허물고 연대와 타협을 통해 타협의 정치권력이 운영되는 체제를 만들어 가자고 하는 것이다. 당연히 새로운 체제는 현재의 소선거구제 대신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다양한 정파를 의회 안에 수렴하기 위해 비례대표를 대폭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반해 의문을 던지는 그룹은, 민주 대 반민주라는 개념 안에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내용적 민주주의가 포함돼 있으며, 절차적 민주주의는 권력자부터 법을 준수하며 모든 권력의 집행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민주주의 원칙에 의해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절차적 민주주의이다.

절차적ㆍ내용적 민주주의 충족됐나

내용적 민주주의는 불평등과 소득의 양극화를 완화시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심화돼 가는 불평등과 소득의 양극화가 사회적 불안 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 막는 방법은 불평등과 소득의 양극화를 완화시키며, 자력으로 생활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질문 한다. 오늘 6월10일, 87년 체제가 담고 있던 절차적 민주주의와 내용적 민주주의가 충족됐는가.

 

곽경전 부평미군부대 시민참여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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