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의 도시이야기] 도시와 집합 주거-인술라

도시는 규모가 커지면 사람이 몰려들고 주택도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마련이다. 특히나 한정된 토지에 사람이 몰려들면 당연히 주거 밀도가 높아지고 주택들은 수직 확장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집합 주거의 탄생 배경이다.

역사적으로 집합 주거가 최초로 발달한 곳은 로마 제국의 도시들이었다. 천재적인 도로 건설 기술과 광대한 운송 네트워크를 형성했던 로마는 고대에 이미 세계 각처 사람들이 몰려드는 국제도시로 성장했다. 자연히 땅과 비교하면 거주 인구가 많을 수밖에 없었으며 여기저기서 몰려든 사람들은 로마 한구석에 집을 올리기 시작했다. 도시형 집합 주거인 인술라(insula)라는 주거형태가 나타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인술라는 평균이 4층이었으나 7층 이상 올라가는 일도 있었다. 이 양식의 건물은 주로 도로를 끼고 있어 1층에는 점포가 있는 게 일반적이었고 그 위로 주거가 겹쳐졌다. 초기 인술라는 건설비용을 절약하고자 목재로 3~4층 높이로 지어졌으나 화재와 붕괴에 취약했던 탓에,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인술라의 하부를 벽돌로 짓고 전체의 높이도 20m 이하로 규제했다.

이후로 인술라는 더욱 튼튼해지고 안정감을 갖추게 됐다. 게다가 기원전 2세기부터 화산재의 일종인 포졸라나(pozzolana)를 이용한 콘크리트 축조법이 개발돼 저렴한 비용으로 대규모 건물을 축조할 수 있었던 로마였기에 인술라는 순식간에 도시 대부분을 덮어버렸다. 노예와 이주민을 제외하고도 100만여 인구가 살던 4세기 제정시대 로마에는 이미 4만6천여 채의 인술라가 있었다고 하니 거의 모든 시민들이 집합 주거에 살던 셈이다.

그러나 부자나 귀족은 인술라를 선호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뜨리움과 안뜰을 지닌 도무스(domus)라는 주택에서 일과 휴식을 즐겼으며 대리석벽과 유리창, 화려한 장식이 박힌 바닥은 물론 난방용 화덕과 식수용 수로를 갖춘 저택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다. 인술라는 중산층이나 하층 계급의 몫이었다. 또한, 도무스 주택은 내향적인 공간구성이었던데 반해, 인술라는 도로를 향해 개방된 구조였다.

그래서 마차나 수레의 소음에 그대로 노출됐으며, 평균 200여명 이상이 동시에 사는 만큼 생활 소음이나 저층부 상가에서 발생하는 소음 등으로 온종일 시끄러웠다. 게다가 유리창이 없는 창문에 생활 쓰레기를 던지는 사람들도 많았다는 기록을 보면 그리 품격 있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거 단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로마는 인술라를 이용해 당시 도시가 직면하고 있던 이른바 홈리스(homeless) 문제를 해결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빈부 격차와 같은 사회 문제나 주거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었다. 로마는 현재 우리사회의 고민을 이 때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김영훈 대진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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