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도둑이라는 게장은 말할 것도 없고, 국, 찌개, 전골 등이 자작자작해지면 밥 한 공기 넣고 볶은 후 조금 눌려 먹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든다. 지금도 필자는 보약보다 밥심을 더 믿으며 직접 쌀을 씻어 밥을 짓곤 한다.
지난 주말 쌀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열렸다. 우리나라는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물량을 조금씩 늘리는 방식으로 10년씩 두 번에 걸쳐 WTO 의무인 관세화를 미뤄왔다. 그 결과 올해 우리가 수입해야 하는 물량은 작년 전체 쌀 소비량의 9%에 달하는 양까지 늘어났다.
수입쌀의 비중 증가는 의무수입량 증가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의 부친은 부족한 쌀 생산량과 가격대책 차원에서 절미(節米), 혼식(混食) 운동 세대이고, 필자 역시 부친이 정한 원칙에 따라 주말에는 반드시 혼식을 했었다. 쌀 소비를 억제할 만큼 수급이 맞지 않던 반 세기 전과 달리 지금은 생산성 향상으로 쌀 공급은 늘어난 반면 소득 수준 향상과 웰빙 바람으로 쌀 소비가 줄어드는 현상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소비의 감소와 의무수입량의 증가 탓에 쌀 관세화 유예에도 농가가 지는 부담이 커지게 됐다.
무역 진흥과 통상 문제를 연구하는 업 때문에 무조건 쌀을 관세화시켜야 한다고 강변할 생각은 없다. 다만, 많은 WTO 전문가, 농경제학자, 그리고 일부 농민단체조차도 관세화 유예에 따른 의무수입량 증가가 오히려 부담을 가중시켰고, 관세화를 추가로 미루는 것은 훨씬 더 큰 부담이 낳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음을 글로 옮기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얼마 전 유예에 성공했다고 보도된 필리핀 사례의 내용을 보니 의무면제(waiver)라는 더 부담스러운 장치를 통해야만 했고, 그것도 매우 한시적이며, 쌀 수출국들에 반대급부로 꽤 많은 내용을 양보해야만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필자는 여러 통상협상에서 우리 정부 협상대표들이 쌀과 농수산업을 지키고 위해 얼마나 힘든 싸움을 해왔는지를 봐왔다. 정부가 수출 대기업만 챙기고 우리 농가를 외면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다만, 국내 이해관계자들과 좀 더 많은 협의를 거치지 않았거나, 그런 협의를 해왔는데도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 청계천 복원 시 청계천 상인을 담당했던 공무원들이 욕설과 멱살잡이를 당하면서도 4천300여 회에 걸쳐 만났다는 이야기나, 지구대 이전을 반대하던 주민들과 일일이 만나며 설득해 결국 마음을 움직였다는 한 경찰서의 이야기는 논리(論理) 뿐만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정리(情理)의 필요성도 일깨워주는 좋은 사례이다.
쌀 소비가 줄어든 것은 다양한 먹을거리가 생겨난 탓도 있지만, 웰빙 바람으로 쌀밥이 만병의 근원처럼 취급된 데 기인한다. 껍질을 벗겨 낸 쌀에 물을 붓고 열을 가해 변신시킨 밥을 천 년 이상 주식으로 삼아 왔는데, 이것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백미 식사의 부정적인 부분을 지적해야 한다면, 동시에 바람직한 식사 방식을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쌀 소비가 줄어든다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한 유명 주방용품 업체가 만든 세라믹 밥솥은 밥맛을 좋게 해준다는 소문 덕에 매번 동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마케팅보다는 좀 더 소비자의 관심을 이끌어 선택하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부가 농민들의 마음을 얻는 정리를 전개해야 하는 것처럼, 농업 관계자들도 쌀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리를 펼쳐야 한다. 이것이 농업도 살고 소비자도 사는 길이 아닐까?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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