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에 와서 일본은 또 전쟁을 일으켜 한국을 먹어버리더니 36년간을 지배했다. 지금 아베가 다시 전쟁을 시작하려 한다. 과거 일본의 조상이 전쟁을 일으킨 것처럼 아베가 한국을 침략한다면 한국은 일본을 이길 수 있을까? 일본은 군사력이 전 세계 3위인데 말이다. 그런 미묘한 시점에 이 영화가 나왔다.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명량’이 와 닿는 이유가 그곳에 있다.
‘명량’은 2차 왜의 침략인 1597년 정유재란을 그린 것이다. 정유재란은 원균이 거북선 3척과 전선 100여 척, 병사 1만 명을 끌고 참전했던 칠천량 전투가 참패로 끝나고, 모진 고문을 받고 투옥되었던 이순신이 백의종군하여 남은 배 12척만을 갖고 왜군 333척과 맞서 싸워 이긴 명량대첩으로 이어진다. 전 세계 해전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이러한 전적은 이순신의 표현대로 ‘하늘이 도운’ 전공이다. 여기서 하늘은 곧 백성이 아닌가.
감독에게 지금 이 시기 ‘명량’을 만든 이유를 물었다. “갈등과 분열 속 현재 대한민국에 통합의 아이콘으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역사적 인물, 그리고 그 엑기스가 명량해전”이라고 말한다. 한국은 과거 조선이 명과 왜의 사이에서 힘들어했듯이, 지금도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처량한 지경에 놓여 있다.
말로만 자주국방, 자주외교를 부르짖었지 국력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언제 아베가 쳐들어와 독도를 내놓으라고 할지 두렵기만 하다. 우방이라던 미국마저 그때는 외면할 게 뻔한데 한국은 독도가 문제가 아니라, 나라를 보전하는 것조차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아베를 보면 이 세상에서 제국주의가 사라진 게 아니란 걸 실감하게 된다.
대체 한국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역사상 가장 자랑스럽게 살다간 한국인의 좋은 유전자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그 좋은 유전자를 잘 계승하여 국가와 민족을 잘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 세월호 참사를 떠올린다.
아이들을 버리고 도망간 선장들과 선원들, 국가재난 시스템을 엉망으로 만들어 국가를 위기에 몰고 간 공무원들, 파렴치한 국가 지도자들, 정쟁만을 일삼는 이기적인 정치가들은 이순신 당시 조선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국민을 도탄에 빠트리고 국가를 적의 수중에 몰아넣는 자들은 하나같이 국가나 국민보다도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자들이다.
오직 이순신만 다르게 생각했다.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국가와 국민만을 생각하여 자신을 희생하고자 했다. 지금 정치가들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정당만이 세상을 구원할 것처럼 국민에게 말하며 사람보다는 정당지지를 호소한다. 이순신도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면 당시의 정세에 따라 행동했지, 겨우 12척으로 왜적과 맞서 싸울 생각을 왜 했겠는가.
‘명량’은 국민이 봐야 하는 영화가 아니라, 정치가와 관료들이 봐야 하는 영화다. 미국인에게 역사상 최고의 본보기는 링컨이고 남북전쟁의 게티즈버그 연설이듯이, 우리에겐 이순신과 명량해전이 있다. 링컨의 명연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은 이순신의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려워하게 할 수 있다”라는 명연설로 대체된다.
이러한 자긍심이 지금 이 시기 한국 정치에 필요하다. 순천향대에 이순신 연구소가 있다. 일개 대학의 연구소일 뿐이다. 하지만, 이순신 정신을 오늘에 계승하는 중요한 연구소이다. 국회에 있어야 할 연구소를 민간이 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나서는 건 국민이다. 국가지도층은 부끄러워할 일이다. 국회가 정신줄을 놓은 지점을 선명히 보여준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국회의원들은 이참에 어서 ‘명량’ 시사회를 열어 이순신정신을 생각하며, 국민을 위한 단합된 정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대오각성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정재형 동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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