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논단] 치료의 선풍기야 돌아라

요란한 기계소리와 함께 숨 막히는 더위를 날려 보내려는 듯 힘차게 팬을 돌리는 대형 선풍기의 굉음은 자그마한 공장을 가득 메워 어지간한 사람 목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는다.

한낮의 온도가 32도를 넘는 주일 오후, 김포의 H공장에서 사출 일을 하는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건강체크를 위해 필자와 의료팀이 찾아가는 건강검진 방문을 했다.

사랑마을이주민센터에서는 4년 전부터 격월 로 30여명의 의료팀이 찾아와 의료종합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의 명단을 만들고, 연중 가장 취약한 때에 현장을 방문하여 도움을 주기로 한 것이다.

열악한 이주노동자 근로환경

7월 중순의 바깥 온도에 대해서는 누구나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에어컨도 없는 공장 내부, 기계가 내 뿜는 열기에다 비좁은 공간 그리고 기름과 플라스틱을 가열하여 녹인 냄새까지 곁들여져 있는 그곳을 과연 의료팀원들 중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다행인 것은, 우여곡절 끝에 건강검진을 잘 마쳤고 아픈 사람 없이 모두들 건강하다는 것이다. 의료팀원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너무나 열악한 환경인데도 아프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아플 여유가 없는 것과 자신의 희생은 곧 가슴이 시리도록 보고 싶은 가족들에게 희망이라는 사실이 아닐까요?”

그러나 대다수의 의료팀원이 공감하는 것은 저런 상태로 건강을 돌보지 않고 일만 하다가 언젠가 실직을 하든가 아니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돌아오는 동안 내내 필자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공장 내부의 더위를 식혀 보겠다고 돌리긴 하지만 더운 바람만 일으키는 ‘대형 선풍기’였다.

필자를 비롯한 의료팀원들의 생각에는 그 선풍기는 한마디로 ‘무용지물’ 그 자체였다.

의지할만한 것이 아닌 것에 의지하며 기대는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안쓰러워 편하질 않았다.

죽도록 일만 하는 이주노동자들.

혹자는 말한다. “일하고 돈 벌기 위해서 왔으면 당연한 것 아니냐?”라고.

필자는 반문한다. 그렇다고 사람은 기계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기계라도 일정시간 일을 하면 닦아주고 조여주고 기름칠도 해주는데, 또 그렇게 해야만 기계의 수명도 연장이 되는 것이다.

자가용 소지자들 중에, 10년이 넘은 차를 새 차 때의 컨디션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차량을 점검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그 때 그 때 수리를 하는 분들이다. 그 덕에 남들 두 번 차 바꿀 때까지 여전히 아무 문제없이 깨끗하게 차를 타는 것이다.

하물며 이주노동자들은 사람이 아니던가!

아무리 일을 하기 위해서 온 분들이지만 때로는 위로의 말이, 때로는 쉼이, 때로는 치료가 필요한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이러한 ‘위로와 쉼 그리고 치료’가 적절하게 이루어진다면, 이는 곧 바로 노동력 향상과 품질상승이라는 열매로 나타날 것이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이주노동현장에서는 이런 여유있는 모습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우리가 제대로 된 위로와 쉼 그리고 치료의 대형 선풍기를 한 번 돌려주자’고 급하게 센터 식구들과 그날 저녁에 의논을 하였다.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국민휴가철에 그분들과 함께 산이나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로 말이다.

위로와 쉼, 적절한 힐링 필요

호사스러운 휴가는 아니지만, 단 이틀이라도 자연에서 맘 편하게 느끼는 선풍기 바람은 온 몸을 흠뻑 적신 땀만 식히는 것이 아니라 고된 이주노동에 지친 마음과 가슴시리도록 보고 싶은 가족을 향한 그리움까지도 달래 줄 것이다.

바람아 불어라. 이주노동자들의 가슴을 향해서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시원하면서도 따스하게!

김철수 목사•사랑마을이주민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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