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과 거짓말의 경계서 바라본 인간의 본질

밀란 쿤데라 14년만의 신작 ‘무의미의 축제’

21세기 생존하는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는 밀란 쿤데라가 신작 소설 ‘무의미의 축제’(민음사刊)가 출간됐다. 지난 2000년 ‘향수’가 스페인에서 출간된 이후 14년 만의 소설이다.

‘무의미의 축제’는 알랭, 칼리방, 샤를, 라몽, 네 주인공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촘촘히 진행된다. 새로이 에로티시즘의 상징이 된 여자의 배꼽에서부터 배꼽에서 태어나지 않아 성(性)이 없는 천사, 가볍고 의미 없이 떠도는 그 천사의 깃털, 그리고 스탈린과 스탈린의 농담, 그에서 파생된 인형극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사유를 이어 가며 인간과 인간 삶의 본질을 탐구한다.

1967년 첫 소설 ‘농담’에서 시작되어, 1984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전 세계를 사로잡은 그의 문학 세계는 2014년 ‘무의미의 축제’에서 그 정점을 이루며 쿤데라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내맡겨진 인간, 그 존재의 가벼움에 천착하는 쿤데라는 이번 소설에서 ‘스탈린과 칼리닌의 일화’를 교묘히 엮어 낸다.

 

사냥을 간 스탈린이 자고새 스물네 마리를 발견하는데, 총알이 열두 개밖에 없다. 열두 마리를 쏘아 죽인 다음 총알을 가지러 13킬로미터를 왕복하는데, 돌아와 보니 남은 열두 마리가 그대로 있다. 이 경험을 스탈린이 자신의 동지들에게 이야기해 준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는 동지들 모두 웃지 않고 입을 꾹 다문다. 모두들 스탈린의 이야기가 ‘웃자고 한 농담’이 아니라 ‘역겨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스탈린의 농담은 “아무도 웃지 않는 장난”이 되어 버린다.

쿤데라의 첫 번째 소설 ‘농담’에서, 농담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왔다면, 어쩌면 그의 마지막 소설이 될지도 모를 ‘무의미의 축제’에 등장하는 이 스탈린의 일화는 이제 ‘농담’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넘어서, ‘거짓말’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네 남자의 이야기 사이에서 어쩌면 기이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이 역사적 일화를 통해 쿤데라는 하나의 농담조차에도 진지하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시대의 무거움, 그 비극성과 마주하는 태도로서 ‘무의미’를 이야기한다.

결국 우리 인간 존재의 삶이 아무런 의미 없음의, 보잘 것 없음의 축제이며 이 ‘무의미의 축제’야말로 우리가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의 시대라고. 쿤데라는 말한다. “우리는 무의미를 사랑해야 한다”고. 값 1만3천원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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