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여름날의 독서

뜨거운 여름이고 한가한 방학이다. 종강하는 날 학생들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방학동안 힘이 닿는 대로 독서에 힘쓰라고 말이다.

타는 듯한 태양빛과 찢어지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사물과 세계를 새롭게 보게 해주는 좋은 책의 행간에 파묻혀 지내는 것이 최고의 피서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간 지금 이 약속을 마음에 새겨둔 학생이 몇이나 있을까? 대부분 아르바이트에 힘쓰거나 학원에 다니며 토익공부에 열중일 것이다. 졸업 후의 취업걱정에 마음 졸이는 아이들이 한가하게 고전이나 인문학 서적에 눈길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정치에 무관심한 그들이 신문사설을 읽으리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그러나 나는 매순간 독서와 신문읽기, 당대의 정치와 역사에 부단한 관심을 기울이라고 반복한다. 그것이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온다 해도 선생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일 뿐이다.

이 체제가 만들어낸 실업문제를 대학과 교수가 책임지고 취업 시킬 수도 없고 그들이 겪을 암울한 미래를 해결해줄 수도 없다. 그 아이들의 공포와 불안을 진정시킬 수는 더군다나 없다.

그러나 공포와 불안을 지워내고 이 사회가 요구하는 획일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 개별적인 삶을, 진정으로 주체적이고 의미 있는 자신만의 삶을 도모하라고 격려할 수는 있다. 덧붙여 그 길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독서라고 말한다. 그런데 오늘날 대학과 교수들은 학생들의 취업률을 걱정하고 그들의 스팩을 쌓는 일을 강요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취업걱정에 시달리는 이 시간에 그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게으른 독서를 요구한다.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과 공포로 인해 마냥 시들어가는 대신에 현재의 시간에 몰입해 관능적인 독서에 빠지기를 권유한다.

그 독서의 양에 비례해 그 학생의 삶이 이전과는 다른 삶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공부는 지식과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게 되는 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몸으로, 감각으로 바뀌는 일이다.

오로지 좋은 책만이, 고전만이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해준다.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삶을 어떻게 추구해나갈까를 고민하게 해주는, 각성하게 해주는 것이 독서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그러한 길을 적극적으로 감행하도록 권유해주는 학문의 전당이다.

최근에 인문학 열풍이 부는 것도 같고, 관련 책들도 잘 팔리는 것도 같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런 열기가 다분히 의심스럽고 불안하다. 수사적인 차원에서의 치유나 가벼운 위로 따위로 상업화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책을 읽고 인문학에 대해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삶을 성찰하거나 체제에 사로잡힌 나를 탈주시키고자 하는 격렬한 반성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체가 되고 한 개인이 되고 이른바 예술가가 되는 일이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를 따름으로써 자신만의 작품, 자신만의 삶의 길을 창조하고자 하는 일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스스로의 독자적인 삶을 만들어가는 차원에서의 예술가들이다. 인문학 공부는 그렇게 예술가의 길, 진정한 주체의 길을 도모해가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다.

오늘날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진정한 자기가 되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는 이들, 예술 하는 이들의 책임이란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서 인간의 삶과 정신의 가치에 대해 예리한 인식을 드러내고 더 나은 삶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다.

박영택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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