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GOP 총기난사 사건

병사관리 부실… 예고된 시한폭탄

지난 6월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임모 병장(22)의 ‘GOP 총기 난사’ 사건.

5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을 입은 끔찍한 참사에 군 당국은 물론, 국민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역을 불과 3개월여 앞둔 임 병장은 왜 이 같은 참혹한 일을 저지른 것일까. 관심병사로 분류된 임 병장이 실탄을 지급받고 최전선 GOP에 투입된 이유는 무엇인가.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군의 ‘적폐’가 하나둘씩 드러났다.

결국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은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해야 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을 토대로 동부전선 GOP 총기 난사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단 20분 만에 일어난 비극

6월21일 오후 7시55분. GOP 주간 경계근무를 끝낸 임 병장은 돌아오는 길에 소초 후방 보급로 삼거리에서 같이 근무에 투입됐던 동료 장병 7명을 만난다. 당시 임 병장은 K2 소총 1정, 수류탄 1발, 실탄 75발을 지니고 있었고, 동료에게 “초소에 ‘온열손상킷’을 두고 왔다”고 말한 뒤 초소로 돌아가 이를 챙겨 나왔다.

그리고 오후 8시10분, 임 병장은 동료들과 23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수류탄을 투척했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수류탄이 폭발하며 파편에 맞은 최모 일병(21)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놀란 나머지 장병들은 피신하기 시작했다.

임 병장은 도망가는 장병들을 쫓아가며 사격을 했다. 이 과정에서 김모 하사(23)가 총탄에 맞고 숨졌다.

이후 수류탄 투척 지점에서 120여m 떨어진 대피호로 이동해 조준 사격, 김모 일병(23)이 숨졌고 바로 옆 GOP 소초 통로에 있던 이모 상병(20)과 진모 상병(21)을 향해 총을 쏴 숨지게 했다.

임 병장이 소초 통로에서 나온 것은 8시17분. 단 20여분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이후 후방 보급로를 따라 유유히 탈출했다.

군은 임 병장이 두 차례에 걸쳐 탄창을 교체했으며, 체포 당시 30발을 지니고 있던 점과 9발 남은 탄창이 버려져 있는 것을 바탕으로 36발 정도를 사격한 것으로 파악했다.

임 병장 탈주, 허술한 군 대응

임 병장이 최초 식별된 것은 사건 발생 18시간 뒤인 22일 오후 2시17분께 제진검문소 북쪽 방면에서였다. 사고 현장에서 약 7㎞ 떨어진 지점이다.

이후 군은 24시간 동안 임 병장의 가족과 함께 투항을 설득했다. 9개 대대급 병력이 고성군 현내면 야산 일대에 투입됐다.

군은 임 병장의 아버지가 자식에게 투항을 권유하는 목소리를 녹음해 심경변화를 유도했으며, 이날 오전 8시 20분부터는 7~8m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투항을 권유했다. 결국, 임 병장은 사건 발생 43시간 뒤인 23일 오후 2시 55분께 자살을 시도한 뒤 생포됐다.

그러나 군 당국은 수색 과정에서 임 병장을 세 번이나 마주치고도 체포하지 못했다.

오전 11시16분, 같은 날 오전 11시56분, 23일 새벽 2시13분께 각각 수색 중이던 병력과 임 병장이 접촉했고, 임 병장은 ‘훈련병이다’, ‘피아식별 띠를 가지러 가는 길이다’, ‘암구호를 잊어버렸다’는 거짓말을 하고 계속 도주한 것이다.

또 수색 과정에서 오인 사격으로 수색팀 소대장 김모 중위가 팔 관통상을 입기도 했다.

이와 함께 군 의료 인력이 총기 난사 발생 당시 현장에 늦게 도착해 응급조치가 제때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희생자 5명의 사망이 최종 확인된 시간은 밤 10시4분으로 사건 발생 1시간54분 뒤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대 소속 의무부사관이 GOP 소초에 도착한 시간은 사건 발생 1시간36분 뒤인 밤 9시46분이었고, 같은 대대 소속의 군의관은 1시간55분 뒤인 밤 10시5분에야 GOP 소초에 도착했다. 중앙119 응급헬기도 사건 발생 3시간27분 뒤에야 도착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그 후

이번 사고로 숨진 5명에 대한 합동 영결식이 6월28일 경기도 성남시 율동 국군수도병원 의무사 연병장에서 육군 제22보병사단장으로 엄수됐다. 이들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앞서 희생자 유가족들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 있는 조치가 취해질 때까지 장례식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가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사과를 수용, 영결식을 진행했다.

7월4일 임 병장에 대한 구속 영장이 발부됐다. 적용된 죄명은 군 형법상 상관 살해와 형법상 살인, 군무이탈 등 7가지다. 이어 군 수사기관은 8일 임 병장을 대동해 현장검증을 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해당 GOP 소초장 A 중위도 9일 구속 수감됐다. A 중위는 명령위반, 전투준비태만, 적전특수군무이탈의 혐의를 받고 있다. A 중위는 해당 GOP의 기존 소초장이 지난 4월 감시장비 분실과 소초 시설물 훼손 등을 이유로 보직 해임되자 다른 부대의 부중대장 직책을 맡고 있다가 이번 사건이 발생한 GOP의 소초장 직무대리로 임명된 바 있다.

글 _ 이관주 기자 leekj5@kyeonggi.com 사진 _ 연합뉴스


軍 총체적 적폐 드러낸 비극

이번 동부전선 GOP 총기 난사 사건을 통해 숨겨 있던 군의 적폐가 낱낱이 드러났다는 목소리가 크다. 국방부 장관이 공식적으로 군 내 왕따 문제를 언급하는가 하면, 임 병장이 관심병사로 지정돼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관심병사 관리 체계의 허점이 드러나는 등 이제껏 수면 아래에 있던 문제들이 하나 둘 떠올랐기 때문이다.

관심병사에게 총 쥐여 준 軍

관심병사는 군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고 위험이 존재하는 병사를 일컫는다. 실제 자살, 자해, 탈영, 하극상 등 사고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부대에서 공식적으로 분대장급 이상 지휘관이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병사다.

임 병장은 지난해 11월 관심병사 등급이 ‘A급(특별)’에서 ‘B급(중점)’으로 하향 조정되면서 GOP 근무에 투입됐다. 군이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하향 조정을 이유로 초소 경계근무를 서는 전투병력으로 배치, 총과 실탄, 수류탄을 손에 쥐여줬기 때문이다.

관심병사가 최전방에서 행정, 취사 등 비전투 임무가 아닌 전투임무를 맡게 된 이유는 병력 부족 탓이 크다. 2인 1조로 돌아가는 GOP에서 ‘1명 부족은 2명 부족’과 마찬가지여서 무리한 운용이 불가피하다. 관심병사의 업무를 비전투임무로 국한하지 못한 군의 과실 책임 논란이 불가피한 까닭이다.

수면 위로 드러난 군대 내 왕따 문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지난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이번 사고 원인과 관련된 질문에 “이등병 때 주로 사고가 나는데 병장에게서 사고가 난 것은 집단 따돌림이라는 현상이 군에 존재한다”고 답변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이후 김 장관은 성명을 통해 “본의 아니게 집단 따돌림이 GOP 총기 사고의 동기가 된 것처럼 오해를 불러와 유가족 여러분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김 장관의 발언을 통해 군대 내 왕따 문제가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공공연하게 떠돌던 ‘기수 열외’ 등 군내 문제가 국방부 장관의 입을 통해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임 병장의 가족은 “아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실체적인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군 기강 해이 비판 목소리 확산

이번에 총기 사고가 발생한 육군 22사단은 과거에도 총기 사고나 무장탈영 사고가 발생했던 곳이다. 이 때문에 군의 기강 해이가 도를 넘었다며 질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2사단은 지난 2012년 10월 이른바 ‘노크귀순’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당시 북한군 병사는 우리 군의 경계를 뚫고 GOP까지 내려와 내무반 문을 두드리고 귀순 의사를 표명했다. 당시 군은 북한군 병사가 내무반 문을 두드릴 때까지 이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앞서 2011년 강화도 해병대에서 관심병사가 총기를 난사한 사고가 발생, 군이 관심사병에 대한 특별관리에 나섰으나 비슷한 유형의 사건이 또 터진 것이다.

글 _ 이관주 기자 leekj5@kyeonggi.com   사진 _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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