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근이 세번째 시집 ‘당신이 어두운 세수를 할 때’(문학과지성사刊)를 출간했다
김근하면 신화적 상상력, 위력적인 리듬, 풍성하고 섬세한 시어로 평단과 독자에게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는 시인이 아니던가.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작정한 듯 기괴한 이미지들을 포진시켜놓고 있다.
“느닷없이 젖은 팔 하나가 내 발목을 붙잡”(「젖은 팔」)거나 “모르는 손은 먼저 내장을 끄집어”(「뼈만 남은」)내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리고 시의 인물들에겐 종종 원인을 알 수 없는 저주를 걸어놓았다. 「언니들」이나 「지워지는」의 인물들은 몸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고 「섬」의 ‘늙은 할미’는 지네처럼 기어 다녀야 한다.
이러한 비일상적인 장면들에서 독자들이 놀라는 이유는 그것들이 환기하는 낯섦이나 기이함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에 일상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근의 악몽들은 텍스트 안에 갇혀 있지 않고 꿈틀거리다가 발광하다가 기어이 뛰쳐나와 우리의 의식을 향해 손을 뻗는다.
악몽의 이미지들에도 불구하고 김근의 시는 매혹적이다. 그의 시가 조장하는 공포는 치명적이게 중독성이 강하며 무섭고 소름끼칠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도무지 어쩔 수 없을 만큼 유쾌할 때도 있다.
그 이유는 시인이 고통을 대하는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반복되는 가위눌림 앞에서 김근의 화자들은 두려운 대상을 은근히 깔보고 능청스럽게 외면한다. 시를 다 읽고 나면 처음의 고통은 어느덧 수용 가능할 만큼 무뎌져 “허참” 하고 한번 웃게 된다. 값 8천원 강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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