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구체적인 시대적 배경도 다를 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의 신분 또한 하늘과 땅 차이다. 한쪽은 백정 출신의 의적 두목이고, 한쪽은 우리민족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위인들 중에 한 분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영화는 한 가지 주제를 공유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라와 민족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리더십’이다. 비록 국가의 존망이 달린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주인공들이 죽음의 벼랑 끝에 내몰린 백성들을 구하고자 했던 진심만은 사실상 동일하다.
그래서 영화 ‘명량’ 속의 이순신 장군은 부질없는 전투를 포기하라고 간청하는 그의 아들에게 ‘충(忠)’이라는 유교의 핵심개념을 이렇게 설명한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따라야 하고, 그 충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에게 있다.”
최근 우리사회를 커다란 충격에 빠뜨렸던 다양한 사건사고들의 핵심문제는 바로 ‘리더십의 부재’였다. 직책상의 리더는 셀 수도 없이 많았지만, 막상 문제가 터졌을 때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해낸 리더는 많지 않았다. 단순히 재정, 인력, 장비 등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아마도 두 영화의 기록적인 흥행에는 우리사회의 이러한 현실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 험난한 시대를 앞장 서서 뚫고 나아갈 리더들을 찾고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사회에는 사회 각 분야에서 자천타천 리더가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조금만 유명해지면, 언론들이 앞장 서서 해당인물들에게 ‘국민OO’, ‘멘토’ 등의 수식어를 붙여주며 우리사회의 리더가 되어 보라고 부추긴다. 한마디로 우리는 ‘리더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많은 리더들 중에 정작 국민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는 리더, 그래서 국민들이 믿고 따르기를 원하는 리더는 많지 않다.
즉 우리는 ‘리더의 가뭄’ 속에서 고통 받고 있다. 리더의 홍수와 가뭄의 공존. 왜 이러한 모순이 발생하는가? 우리사회 리더들의 스펙에 부족함이 있기 때문인가? 아니다. 외적 스펙에 있어서는, 현재 우리사회의 리더들이 과거의 리더들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리더들에게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현재 우리사회의 리더들이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진심’이 심각하게 의심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능한 리더라도 항상 성공만 할 수는 없다. 때로는 처참한 실패와 절망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따르는 사람들이 그의 진심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한, 그 리더는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오히려 현재의 실패는 미래의 성공을 위한 훌륭한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다윗 왕은 이스라엘 역사 중에 가장 위대한 왕으로 추앙 받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의 인생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그는 왕이 되기 전뿐만 아니라 왕위에 오른 이후에도 심각한 위기들을 맞이하곤 했다. 전임자 사울 왕의 시기와 박해를 피해 오랜 시간 황량한 들판을 떠돌아다녀야만 했고, 자신의 친아들에게 쫓겨 다니며 온갖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윗 왕을 따르던 무리들은 그의 진심을 변함없이 믿어주었고, 마침내 다윗 왕은 그들과 함께 또 다시 일어설 수가 있었다.
12척의 배로 300여 척의 왜구를 대파시킨 명량대첩의 기적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리더는 진심으로 자신을 따르는 자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따르는 자들은 리더의 진심을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보자.
김학중 안산 꿈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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