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 따뜻한 미래] 아주대 의대 ‘마음맺음’ 사업

안부 전화 드리고, 집 찾아가 情 나누는… ‘아름다운 인연’

지난 21일 오후, 앳된 여학생이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해 한 다가구 주택 앞에 멈췄다.

벌써 네번째 찾아온 동네가 이제는 제법 익숙한 듯 최예진 학생(아주대 의과대학 1학년ㆍ여)은 대문 앞에서 기다리던 권석순 할머니(78)를 만났다.

학교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1시간 남짓 걸리기 때문에 다소 먼 길로 느껴지지만 방학 동안 할머니가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한 마음에 할머니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했다. 치매를 앓고 있어 잠깐 어리둥절해 하던 권 할머니는 이내 최예진 학생을 알아보고는 반가워하며 손을 맞잡고 기뻐했다.

지난 4월 처음으로 할머니댁을 방문한 이후 최예진 학생은 할머니를 대하는 태도와 인식에서 많은 성장을 하고 있다. 시간약속을 정하고 방문했지만 할머니가 약속을 잊고 외출을 한 어느 날에는 할머니를 찾아 다니느라 동네를 누비고 다니기도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자문을 구하는 등 진지한 자세로 할머니와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최예진 학생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봉사활동만 해봤던터라 처음에는 할머니를 대하는게 어색했지만 지금은 훨씬 좋아졌다”며 “할머니가 약속을 기억하게 하는 방법도 찾아보게 돼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권 할머니는 “착한 학생이 자주 찾아와서 같이 대화도 하고 공부도 하니까 즐겁고 고맙다”며 “친손주 같은 마음으로 학생이 오는 날을 기다리게 된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같은 학생과 할머니의 인연은 아주대학교와 수원시노인정신건강센터 등이 함께 하는 마음맺음 사업을 통해서 맺어졌다. 지역사회와 연계된 정신보건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된 마음맺음 사업은 아주대 의대가 ‘의료인문학’이라는 정규 커리큘럼 형태로 운영하는 전국에서 유일한 봉사 연계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수원지역의 독거노인 중 건강상의 문제를 안고 있는 고위험군 대상자와 아주대 의대 1학년 학생들이 1대1 결연을 맺고 관계를 쌓아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방문은 매월 1회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주기적인 전화연락을 겸해 노인들의 고독감을 해소해주는 한편 학생들의 인성도 길러주는 효과가 톡톡하다.

프로그램은 당시 수원시노인정신건강센터장을 맡고 있던 홍창형 교수가 지역사회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도움을 주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만 이를 연결하는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인식 하에 학생들과 노인을 연결하는 방안을 고민하며 시작됐다.

1980년도에 노인인구의 81.5%가 자녀와 함께 거주했지만 현재는 38.2%만이 자녀와 함께 거주하고 있으며, 독거노인도 20%를 넘어가는 등 노인의 사회적 고립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 예비의사들이 봉사의 개념에 입각해 독거노인을 찾아가 정서적인 벗이 되어드리고 어려움이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에 도움을 주는 형태의 마음맺음 사업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아주대와 시정신건강센터는 신학기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마음맺음을 해야하는 필요성과 방법, 노하우 등을 알려주고 1년간 활동할 수 있게 각종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3년차에 들어서면서 인지행동요법에 기초한 ‘금메달요법’을 활용한 정신건강교육, 인생 되돌아보기를 통한 우울증 예방, 3T( Touch, Talk, Try) 사업 등 독자적 프로그램 등 좀더 체계적인 모습으로 발전했다.

방문일지를 통해 학생들을 모니터링하는 것은 물론 문제에 직면한 학생들이 전공의 또는 연구조교수, 노인정신건강센터 직원 등과 소통과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이렇게 진행되는 마음맺음을 통해 학생들은 결연노인을 방문해 함께 젊은 시절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어려운 점이 있으면 같이 고민을 하고, 전구도 갈아드리고, 시장을 보러가기도 하고, 산책을 다니는 등 가족보다 가족같은 활동으로 정을 나눈다. 실제로 학생들은 이 관계에서 ‘예비의사’다운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이건흥 학생은 할머니를 방문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노인의 고독과 외로움을 접하고 의대생으로서의 고민을 하게 된다고 전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텔레비전을 틀어놓거나 가끔 우울해보이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노인우울증세를 고민하고 피드백을 통해 해소방법을 찾고자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정성우 학생의 경우 비교적 활발히 활동하시는 바쁜 할머니의 시간에 맞춰 할머니를 찾아뵈면서 부모님의 조언에 따라 조그만 과일이라도 준비해 가면서 성의를 표시하는 등 스스로 부쩍 성숙해졌음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의사가 되면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는 기회도 많아졌다.

또 거의 매주 결연 할머니에게 안부전화를 하고 있다는 이동은 학생(여)은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었는데 할머니가 친근하게 대해주시면서 타인을 대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며 “자원봉사라는 차원을 넘어 인간적인 교류를 하게 되는 것 같아 매우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이지현기자

사진=추상철기자


인터뷰 홍창형 수원시통합정신건강센터장 (아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마음의 씨앗 심는 다양한 봉사 프로그램 만들

“마음맺음 사업은 학생들과 독거노인에게 마음의 씨앗을 심어주는 일입니다” 의대생과 독거노인의 결연 프로그램을 최초로 시작하고 이끌어 온 홍창형 수원시통합정신건강센터장은 마음맺음 사업에 대해 “타인의 인생에 개입해본 적이 없는 학생들이 노인을 대하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윈-윈 프로그램”이라며 “머리가 똑똑한 사람보다는 인성이 훌륭한 의사가 되도록 돕고자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홍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마음맺음 사업의 취지와 의미는

마음맺음 사업은 수원지역을 대상으로 지역사회 노인과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학생을 결연함으로써 노인정신건강 증진에 이바지하고자 시작됐다.

노인은 건강관리 및 질환관리에 대한 의학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인문제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사회적 고립을 극복함으로써 정신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의대생 역시 예비의사로서의 인성함양 및 의사와 환자간 의사소통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사업이다.

-학교에서 지원하고 있는 제도적인 측면

학교에서는 이 과정을 의과대학 정규수업의 일부인 의료인문학 중 하나의 과목으로 지정했으며, 점수를 매기지는 않지만 PASS 또는 FAIL을 부여한다.

1년에 4차례 담당 전공의 및 교수님과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 연간 가장 우수한 학생을 대상으로 학과장상을 수여하고 있다. 특히 세부평가 내용들은 향후 의대생들이 졸업 후에 인턴 및 전공의 지원시 인성평가의 보조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향후 사업 운영계획 및 발전방향

향후 사업방향 등은 많은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지만 이 프로그램을 시발점으로 좀 더 보편화된 사업이 활성화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마음맺음 사업을 모태로 한 비슷한 사업이 다양한 단체와 다양한 지역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도 겪고 보완해야 할 점들을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정신건강 혹은 자원봉사에 대한 조언

많은 분들이 행복비법에 대해 고민한다. 그런데 행복과 관련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이타주의’다. 즉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나아가 그 관계가 어떤 보상을 바라지 않고 선한 마음을 기반으로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우리가 매우 행복해지는 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타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자원봉사는 매우 아름다운 일이다. 그것이 정말 아름다운 이유는 우리가 그런 모습을 볼 때,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행할 때 매우 행복해진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알기 때문이다. 어렵게 생각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우선 봉사활동을 시작하길 권하고 싶다.

이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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