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끌어앉기가 통일의 시작
통일준비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을 위원장 외에 민간위원 30명, 국회의원 2명, 정부위원 11명, 국책연구기관장 6명 등으로 구성됐으며 외교·안보와 경제, 사회문화, 정치법제도 등 분야에서 4개의 분과위를 구성해 분야별 과제에 따른 실질적 성과를 도출하게 된다.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띤 통일준비위원회는 8월7일 청와대에서 첫 번째 회의를 갖고 본격적인 활동을 알렸다. 이날 박 대통령은 “북한에 인프라를 구축하고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당장 인도적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겠지만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기초공사이기도 하다”며 통일을 위한 구체적 청사진 마련을 지시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통일정책은 어떤 정책보다 국민공감대가 필요하고 중요하다”며 “통일준비위가 국민의 통일의지를 하나로 만드는 용광로가 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 달라”고 주문했다.
정부가 통일 준비에 공식적으로 나선 시점에서 우리는 앞서 통일을 이뤄낸 독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동·서독으로 분단돼 1990년 통일을 이루기까지 45년간 분단의 세월을 겪어야 했던 독일.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민족 간 전쟁을 치르지 않아 우리나라와 직접적인 비교를 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수십 년간의 세월을 뛰어넘어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이뤄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 현지의 통일 분야 전문가들은 통일 한반도의 성공을 위해서는 남한에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이 남한 사회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야 북한의 주민들이 자신들의 대안 체제로 중국이 아닌 남한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향후 통일 한반도에서 북한 사회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스템을 전파할 역할도 결국 북한이탈주민들이 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 5월 말까지 국내에 거주 중인 북한이탈주민은 남성 8천16명, 여성 1만8천467명 등 총 2만6천483명에 이른다.
이중 경기도에는 7천1명의 북한이탈주민이 거주(28.5%), 전국에서 가장 많은 북한이탈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도내에서 가장 많은 북한이탈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곳은 화성시로, 632명의 북한이탈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수원시 614명, 안산시 560명, 용인시 532명 등이다.
이 같은 북한이탈주민들은 국내에서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구해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북한이탈주민은 생소한 남한사회에 적응하기까지 적지 않은 애를 먹는다.
남북하나재단(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지난해 8월부터 9월까지 북한이탈주민 1천482명(남성 333명, 여성 1천1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2013년 북한이탈주민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남한사회에서 본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위권이라고 생각한다고 응답한 북한이탈주민은 1.3%에 불과했으며 중위권이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자는 27.3%에 그쳤다.
반면 하위권이라고 생각하는 북한이탈주민은 70.6%에 달해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은 사회적으로 힘든 삶을 살고 있음을 반증했다.
더욱이 응답자의 21.3%는 향후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더욱 낮아질 것으로 전망, 북한이탈주민에게는 무엇보다 ‘희망의 빛’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최근 북한이탈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각종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북한이탈주민으로서 남한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10월 새누리당 김영우 의원(포천·연천)이 북한이탈주민 2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8.6%가 ‘우울하거나 슬픈 생각을 한다’고 답했고 ‘무기력하고 식욕상실에 시달린다’는 탈북자는 63.4%, ‘걱정·불안·불면증 증세가 있다’는 응답자도 81%에 달했다.
특히 절반 이상인 55.2%가 ‘가끔 또는 자주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한다’고 답해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신건강이 매우 좋지 않은 상황임을 드러냈다.
더욱이 통일부 집계를 보면 지난해까지 약 26명의 북한이탈주민이 실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집계돼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한반도 통일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거리이다. 특히 분단의 역사를 극복하고 유럽의 최고 강국으로 우뚝 선 독일은 아직 분단의 역사를 살고 있는 한반도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이러한 독일의 통일 분야 전문가들은 한반도 통일을 위해선 남한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베를린에 있는 ‘동독 사회주의 통일당 독재청산재단’의 옌스 휘트만 박사는 “독일의 경우 통일 이전 동독을 탈출해 서독으로 온 탈동독자들이 통일 후 학교 등에 강의를 다니며 자신들이 동독 사회에서 겪었던 경험과 실상들을 솔직하게 교육해 줬다”며 “통일된 이후의 독일 어린이들은 이들로 인해 동독 시절 있었던 비인권화, 공산주의 시스템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북한이탈주민들 역시 역사의 증인이 돼 어두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데 앞장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 한반도가 통일된다고 해도 남한 사람들은 북한에 가서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남한사람들은 자신의 터전을 버리고 언제 다시 상황이 변할지 모르는 북한으로 이사하거나 거주지를 옮기기 쉽지 않다”며 “결국 북한에 돌아갈 사람은 고향에 가족들이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이다. 그들은 친구들에게 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해 많은 부분 알려줄 수 있고 사회적 갈등이 생기는 것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통일을 연구하고 있는 이은정 교수는 “서독으로 온 탈동독자들은 서독으로 온 순간 누가 탈동독자인지 몰랐다. 그냥 섞여서 살았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누가 북한이탈주민인지 완전히 티가 난다”며 “북한이탈주민을 그저 우리 국민으로 똑같이 대해야 하는데, 마치 꼭 도와줘야 하는 사람처럼 대하는 것은 좋지 않다. 특히 이들이 감시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우리 사회에서 적응을 못 하면 북한사회에서 보았을 때 우리가 북한에 대한 대안체제가 될 수 없다. ‘거봐라 남한 가도 별수 없다!’라는 본보기가 되면 안 된다”며 “헌법상 북한 주민들도 우리나라 국민이다. 정착 지원을 하더라고 눈에 띄지 않게, 자연스럽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에서 도울 수 있는 부분과 종교단체와 인권단체들이 도울 수 있는 영역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목적을 갖고 이들을 지원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들에게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사실, 인격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믿음을 주는 것이다”고 조언했다.
이어 “현재 북한이탈주민들은 정신적으로 굉장히 우울할 것이고 직장을 구하지 못해 삶의 의욕이나 목표의식도 흐릴 것”이라며 “이러한 북한이탈주민들의 이야기를 종교단체와 인권단체들이 들어줘야 한다. 남한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글 _ 이호준 기자 hojun@kyeonggi.com 사진 _ 김시범 기자 sbkim@kyeonggi.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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