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 원경희 여주시장

여주의 백년대계 CEO시장 도전장

숫자 ‘삼(三)’은 특별하다.

특히 한국인에게는 더더욱. 봄이 시작되는 날도 삼월 삼짇날이고, 신붓감으로 셋째 딸은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는 말이 있으며,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어디 그 뿐인가. 우리 법에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세 번까지 재판받는 3심제를 취하고 있고, 예수님도 장사한 지 삼 일만에 부활하셨다.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이 기본이고, 심지어 만세도 ‘삼창’이다. 이렇듯 숫자 ‘삼’에는 긍정과 기대, 기쁨의 정서가 담겨있다. 원경희 여주시장(59)에게도 ‘삼’의 특별한 의미다. 생애 첫 학급반장을 초등학교 3학년 때 했고, 그 후 줄곧 3년 간 반장자리를 지켰다.

대학도 세 곳을 합격해, 그 중 세 번째 대학에 입학했고, 인생의 줄기를 바꾼 세무사 시험도 세 번째 만에 합격했다.

여주시장 역시 두 번의 낙마 끝에 세 번째가 돼서야 비로소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원 시장에게 ‘삼’은 희망의 숫자이면서, 절대 호락하지 않은 ‘도전’, 또 다른 삶을 향한 질주는 ‘집념’과 ‘끈기’, 여주 발전을 위한 ‘약속’의 숫자다. 그리고 앞으로 3년, 여주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여주를 경영하라’… 40년 전 약속을 시장으로 실현

1975년 공직 진출, 세무사로 지역 봉사활동

사실, 꼭 시장이 돼야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스무 살 청년이었던 1975년, 국가직 공무원시험에 처음 합격해 여주를 떠나면서 막연하게 “언젠가는 꼭 여주에 돌아와 고향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다짐과 스스로의 약속이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공직을 접고, 세무사 자격시험 합격을 발판 삼아 세무사로서의 새 인생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나름 실력 있는 세무사로 인정받으며 성공가도를 달렸고, 삶을 돌아볼 여유도 조금 갖게 됐다.

그러다 문득, 청년시절의 약속이 떠올랐다. 늘 가난했던, ‘마을’. 마음 한구석에는 늘 내 고향 ‘여주’에 대한 애착이 자리했다.

원 시장은 세무사시절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뭔가를 생각했다. 최소한 ‘돈’ 문제로 억울한 사람은 없게 하자는 생각에 자신이 대표로 있던 ‘조은세무법인’의 여주법인을 열어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여주에 내려와 보니 ‘현실’이 보였다. 충분한 성장잠재력을 지녔음에도 예산부족과 각종 규제 등에 얽매여 제대로 된 발전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고 슬펐다. 그러다 ‘확신’이 생겼다.

“행정을 도구로 여주를 ‘경영’하자”. 그때부터 여주군수 도전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두 번 떨어졌다. 2010년 지방선거에는 근소한 차이로 낙마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이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확신’과 ‘신념’이 있었다.

그 마음이 시민에 닿았던 걸까.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세무사 원경희는 54.26%라는 압도적인 시민의 지지를 얻어내며 여주시장으로 직함을 바꿨다. 40년 전 ‘언젠가 여주 발전에 기여하리라”던 스무 살의 다짐이 시장이라는 궁극의 위치에서 시작된 셈이다.

여주 발전 핵심은 지역자원 활용한 ‘관광·문화 콘텐츠’ 개발

남한강 활용 수상공연시설 ‘여주아트피아’ 추진

여주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정확한 진단이 필요했다. 문제의 본질은 역시 ‘돈’이었다. 원경희 여주시장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선거 슬로건으로 ‘돈을 버는 여주, 돈을 도는 여주’로 정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었다.

“여주의 가난은 지역 자체적으로 수익을 뽑아낼 수 있는 먹을거리에 대한 부재라고 봅니다. 중앙정부에서 내려주는 교부금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세수를 확보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작은 기업이라도 적극 유치해 일자리도 늘리고, 천혜의 관광자원을 활용해 관광도시로서의 입지를 확보해 여주에 돈이 풀리고, 그 돈으로 지역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이른 바, ‘낙수효과’를 보겠다는 것이 이번 민선6기 여주의 과제이자, 제 목표이기도 합니다.”

말뿐이 아니다. 원 시장의 목표는 ‘구체적’이다. ‘돈’이라는 대상을 목표로 한 만큼 대단히 ‘현실적’이기도 하다. 실현을 위한 가장 핵심적 주제는 ‘문화·관광 콘텐츠’ 개발이다.

후보시절 공약으로 내놓은 ‘여주아트피아’ 조성 약속도 그 일환이다. 수려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남한강 수변에 한국 최초의 수상공연시설인 여주아트피아 건립을 통해 여주를 수도권 문화, 관광도시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다.

그리고 물 위로 우리나라 최고의 감독이 연출하는 뮤지컬 ‘명성황후’와 ‘큰 임금 세종’ 같은 대작 공연을 올리는 것이 원 시장의 또 다른 꿈이자 로망이다. 이와 함께 강천섬 인근에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놀거리’ 시설도 만들 예정이다. 사계절 종합 익스트림 스포츠타운을 조성해 수도권 2천 만 여가인구를 흡수한다는 계획이다.

경량 항공기 활주로를 비롯해 모터패러글라이딩, 번지점프, 수상스키, 웨이크보드, 암벽등반, 짐카나 등 젊은이들에게 각광받는 스포츠 시설이 들어선다.

여기에 여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먹는 재미’를 선사하고 여주농산물 판로 확보를 위한 전세계 음식문화가 총망라된 ‘세계음식문화의 거리’ 조성도 여주 발전을 위한 원 시장의 복안에 포함됐다.

“여주에는 자연이 선물한 남한강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있습니다. 또 세종대왕릉, 명성황후생가, 천년고찰 신륵사, 흔암리 선사유적지 등 91점의 풍부한 문화유산도 있죠. 난개발을 피해 잘 보존된 자연환경, 깨끗한 물과 공기, 품질 좋은 농·특산물. 이 모든 것이 여주의 경쟁력 아닐까요.”

관건은 ‘규제’다. 원 시장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단기가 아닌 5~10년 이상 바라보는 ‘장기 프로젝트’로 정해, 단계적으로 풀어나갈 생각이다.

세종대왕처럼 백성을 위한 백성에 의한 ‘시정’

애민사상 계승 항상 낮은 자리서 시민들과 소통

원경희 여주시장은 ‘살인 미소’가 아닌 ‘살리는 미소’를 지녔다. 어떤 분위기라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푸근하고 해맑은 웃음과 소탈한 진심을 가지고 있다. 지난 8월 19일 인터뷰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영월근린공원을 찾았을 때도 그랬다.

촉촉하게 내리는 빗속에서도 싫은 기색 없이 기자의 포즈 요구를 시종일관 웃으며 받아들였다. 또 스스로 “어떤 포즈가 좋을까” 촬영 각도와 구도를 고민하는 적극성도 보였다. 일찍이 다른 인터뷰이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적극성과 진심이 있었다.

피곤할 만 했지만 한 명 한 명 공원을 찾은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사는 모습과 시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돌발적인 민심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단언컨대, 기자와 카메라를 의식한 행동은 아니었다. 카메라가 떠난 뒤에도 행보는 계속됐다. 이처럼 원경희 여주시장은 무엇보다 시민과의 ‘소통’을 강조한다. 그 것이 여주 발전의 핵심 도구이자 수단, 그리고 철학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가 ‘세종대왕 리더십’을 강조하는 것도 그 이유다. “세종대왕의 능이 여주에 있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백성의 편에서 생각했던 세종의 애민(愛民)사상을 계승해 여주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여주의 현안인 ‘변전소 설치’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키워드도 ‘애민’에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가까이 여주시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주시민은 변전소 건설을 강력히 반대합니다.”

원경희 여주시장의 어깨는 무겁다. 젊은 시절 ‘호언’이 현실이 됐듯 그 말에 무한한 책임을 지녀야 하는 시장으로서의 삶을 4년 간 지속해야 하는 탓이다. ‘혁신을 혁신하라’는 오늘날 시대적 명제가 여주에서 꽃피우길 고대한다.

글 _ 박광수 기자 ksthink@kyeonggi.com 사진 _ 추상철 기자 sccho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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