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현상은 문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한 문화가 지배하는 전 영역을 문화장(文化場)이라고 하자. 문화장을 발생시키는 주체는 중앙정부, 지방정부, 기관, 단체 등 다양하다. 문화장은 예술장(藝術場)으로 범위를 축소하여 사용할 수도 있다.
예술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낯설다고 말한다. 이때의 예술은 예술 전반을 의미하기보다 고급예술이란 개념을 전제로 한다. 예술을 대중예술과 고급예술로 구분하는 것은 문화향유 개념으로 보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대중예술은 시장경제가 잘 작동하는 부분이므로 예술장을 중요시 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순수예술 내지는 고급예술은 시장실패의 전형적인 분야이다. 시장의 경제논리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공공 개입의 정당성이 있다. 그러나 공공개입이 전부 선은 아니므로 예술의 공공 서비스가 정책적 선의에도 불구하고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문화정책의 중앙 공급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확대되었다. 방과 후 학교, 복권기금을 재원으로 하는 전국 순회 공연 사업 등 적극적인 문화공급 정책과 다양한 문화 복지 사업으로 문화향유 기회가 확대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전기의 편익에도 불구하고 전기장이 인체에 해롭다는 것과 같은 부정성이 중앙 공급 식 문화장도 갖고 있다. 중앙 공급식 문화장의 강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전국이 단일 문화장으로 평준화됨으로서 지역의 문화 향유 선택권과 특성, 자생력을 약화시킨다. 더욱이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문화예산은 매칭 펀드를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예산 지출 방식은 문화부분의 가용예산이 적은 지방정부로서는 오히려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무상급식 등 교육부분 뿐 아니라 사회복지 부분에서의 재정 부담이 한계에 이르자 지방정부 단체장들이 디폴트를 선언할 정도로 경직성 예산 압박이 심하다.
일반적으로 불요불급한 지역의 인프라 투자와 기초 생활 정책을 시행하다보면 가용예산이 적게 마련이다. 문화는 상하수도 시설 개선과 같이 그 효과가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그 효과를 측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문제는 복지예산 등 경직성 예산 확보를 위하여 이런 문화의 특성을 이유로 문화부분 예산을 축소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어느 도가 이미 그러한 전례를 보였다. 지방정부 문화예산은 1~2% 정도에 불과하다. 문화부분 예산 축소 유혹에도 불구하고 2015년 문화예산을 3%로 증액 배정한 양평군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문화부분에 대한 예산을 축소할 것인가 확대할 것인가의 문제는 효용성과 성과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에 대한 가치와 평등권의 문제이다. 당장 효과를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문화예술 예산을 축소하는 것은 문화가 장기적인 인적 투자이자 행복지수가 높은 선진사회로 가기위한 인프라라는 점을 잊은 결과이다.
교육이 전 생애 교육으로 확대되고 있음에도 예술을 혹시 소수의 사치스런 개인적 취향으로만 이해한다면, 지금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상상할 수 없는 사회 부작용에 대한 치유 기능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술이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 지수를 높인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러한 예술의 순기능을 받아들인다면 중앙공급 식 전국 단일 문화장은 지역 단위 문화장으로 전환되어 지역별 문화적 특성을 살리고 지역 주민들의 자율적 문화 선택과 향유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철순 양평군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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