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없는 ‘현장의 땀방울’… 매너리즘 찌든 정신을 깨우다
지난 2005년 회사에 입사해 정말 물불 안 가리고 미친 듯이 일한 것 같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많이 나태해졌다. IMF를 지내고 어려운 취업 환경 속에서 어렵사리 입사해 굳은 각오로 일하자고 다짐했던 초심은 오간 데 없다. 그 초심을 찾고 싶다.
이번 1일 체험 현장으로 진정한 땀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는 의미에서 공사판 막노동으로 정했다. 부동산ㆍ건설 담당 기자다 보니 평소 잘 알고 지내는 건설사 대표에게 현장체험 부탁을 했다. 소위 말하는 일용잡부 ‘노가다’ 현장에 투입됐다.
지난 16일 평택시 진위면 봉남리 ‘진위배수지 확장공사’ 현장. 오전 7시30분까지 도착해야 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다.
내가 오늘 할 일이 이건가 하는 생각을 하는 찰라 ㈜장안건설 조성훈 현장 소장이 작업 지시를 하기 위해 마중을 나왔다.
조 소장은 오전에 잔디 식재를 한 뒤 조경과 비탈면 마감을 위한 자연석을 쌓고 배수지 건물 벽돌 작업을 완료하면 된다고 지시했다.
현장 체험 부탁을 할 때 홍정욱 ㈜장안건설 대표가 일당을 주겠다고 한 말이 기억나 조 소장에서 “일당이 얼마냐”고 물었다.
조 소장은 아주머니들이 일하는 잔디 식재는 하루 4만원이고 대형 ‘자연석쌓기’는 기술이 필요해 25만원 정도 받는다고 설명했다. 잡부 일당은 8만~10만원 정도고 목수나 미장 등은 경력이나 기술에 따라 일당에 차이가 있단다.
지난 1994년 대학 재학시절 등록금 마련을 위해 당시 혜화전화국 증축공사 현장에서 전기공사 일을 한 적이 있다. 한 달 일하고 140만원 정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등록금도 보태고 일부 유흥비(?)로 탕진했다.
당시 일용 잡부 일당이 4만~5만 정도 했는데 방학 때면 대학생들이 용돈 마련을 위해 많이들 공사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조 소장은 “요즘은 그런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기술과 경력이 있는 사람을 쓰는 게 우리도 편하다”고 말했다.
기존 도로에서 배수지까지 연결하는 도로 주변 비탈면에 토사 유출을 막고 미관상 좋게 잔디를 식재하는 작업에 투입됐다. 일단 아주머니들이 줄을 맞춰 앉으면 가로세로 18㎝ 잔디를 조금씩 나눠 던져주는 일이었다. 여기저기서 아주머니들이 “빨리빨리 던지”라고 독촉이 잇따랐다.
도로주변으로 280m를 심어야 되는데 끝이 보이지 않았다. 조 소장은 “잔디 식재 일은 인부를 매일 쓸 수 없어 최대한 빠른 시간에 작업을 마쳐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며 “요령 피우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독려했다.
한 50여m 식재를 마쳤을 때 쯤 새참이 왔다. 새참은 오전 10시, 오후 3시 하루 두 번 나오는데 빵과 우유가 제공됐다. 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공사판 새참 하면 시원한 막걸리에 한 사발 들이킬 거로 생각했는데 사실 좀 실망했다.
조 소장은 “현장에서 안전사고를 막고자 술을 못 마시게 한지 오래됐다”며 “막걸리 마시면서 일하는 게 사라진 지 한참 됐다. 아주머니들 같은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간식을 가져와 드시기도 한다”고 말했다.
새참을 먹은 뒤 ‘자연석쌓기’ 현장으로 투입됐다. 배수지 위에 미니 파크 골프장을 조성하는데 비탈면 조경을 위해 자연석을 보기 좋게 쌓는 작업이었다. 굴착기 한대와 2명의 작업자가 있었다. 경력 10년 이상의 작업자였는데 수백㎏의 자연석을 쇠사슬로 묶어 굴착기로 옮겨 쌓을 위치 정확히 놓은 뒤 마감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작업자들은 기자가 옆에 있는 것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듯했다. 작업자 A씨는 “이거 하려면 최소 경력이 10년은 돼야 한다”며 “자연석을 쌓은 뒤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해 마감 작업을 꼼꼼히 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쇠사슬을 자연석에 한번 걸어보고 싶었지만 ‘초짜’에게 그런 기회는 주지 않았다. 자연석이 내려지면 작은 돌로 구멍을 메우고 흙을 다져 마무리하는 작업을 했다. 일을 하다보니 뜬금없이 자연석 가격이 궁금했다. 조 소장은 톤당 6만5천원 정도 한다고 했다.
무거운 자연석은 1개에 1톤이 넘는 것도 있단다. 기자는 “최근 건설자재가 도난되는 사건이 종종 있는 것 같은데 돌 가격이 만만치 않아 밤에 몰래 훔쳐가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조 소장은 “훔쳐가는데 장비 투입하려면 모르긴 몰라도 돈이 더 든다.”라며 웃었다.
조 소장은 “점심 먹으러 가자”며 식당으로 안내했다. 아파트라든지 대형 공사 현장에는 소위 ‘함바식당’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 현장은 현장 인부가 많이 투입되지 않는 소규모 현장이다 보니 주변 식당을 이용한다고 조 소장은 설명했다. 매일 점심때 뭐 먹을까 고민하는 것도 일인데 반나절 빡세게(?)일하고 나니 거짓말 좀 보태 돌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오랜만에 땀 흘려 일하는 뒤 먹은 밥은 정말 꿀맛이었다. 식사 후 달콤한 휴식시간. 조 소장은 “사람들이 사업에 실패하거나 인생 막장에 하는 일이 막노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나라도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을 엔지니어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도 다들 서로의 직무가 다르다 그냥 잡부와 미장, 목수, 타일, 전기 등 전문 일꾼들은 그들 사이에서 레벨이 있다”며 “정상급 기술자들을 보면 정말 장인 정신을 가지고 자신이 건설한 현장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잠시 뒤 시멘트가 배달됐다. 대수롭지 않게 시멘트 포대(40㎏)를 들었는데 이거 쉽지 않았다. 점점 허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한 열 포대 정도 날랐을까 허리가 아파 요령을 피우는 사이 작업반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작업반장은 “대충대충 흉내만 내려면 뭐 하러 왔냐”고 호통쳤다. 이를 악물고 시멘트 포대 40여 개를 하차했다. 작업 반장은 “돈 벌기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며 “여기서도 성실하게 일 잘하는 사람이 대접받는다”고 말했다.
벽돌을 쌓고 조 소장과 함께 4천톤 규모의 배수지 내부로 들어갔다. 배수지는 정화과정을 거쳐 깨끗해진 물이 가정에 공급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치는 연못을 말하는데, 급수량을 조절하면서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배수지는 물을 많이 사용하는 시간대에는 많은 물을 공급하고, 물의 사용이 적은 새벽에는 물의 공급량을 줄이는 등, 급수량을 조절하면서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는 시설이다.
진위배수지가 준공되면 평택 진위면과 송탄면 일대 주민들은 생활용수과 공업용수가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다. 또 배수지 위는 골프파크와 산책로 등을 만들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을 이용된다.
땀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고 도전했던 공사판 막노동 일이 10년차 기자의 초심을 찾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무슨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나의 초심이다.
무작정 최선을 다하던 10년 전보다 지금은 많이 노련해졌지만 그 노련함을 핑계로 나태해 지지 않기로 했다.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고 기자로서의 보람과 긍지, 자부심을 느끼고자 초심으로 돌아간다.
최원재기자 chwj74@kyeonggi.com
사진=전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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