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논단] 솔섬과 푸른 비단섬의 상전벽해

지난 달 초 전국구 급의 한 모임을 인천으로 유치해 치렀다. 매년 봄 가을 지방을 돌아가면서 갖는 모임이다. 숙소를 어디로 할지를 고민하다가 송도국제도시의 한 호텔로 정했다.

여느 모임처럼 가무음주와 고스톱이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이윽고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자 창 밖을 내다보던 이들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야 송도 대단하구나” 해양경찰청 뒤편의 해장국집에서도 “송도는 해장국도 맛있네”라고들 떠들었다.

해장을 마치고 청라국제도시의 중앙호수공원으로 데려갔다. 휴일을 맞은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자전거를 타거나 호수 주위를 걷고 있었다. 또 한번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엄청나구만” “외국 영화에서 보던 풍경 그대로네”

솔섬(松島)과 푸른 비단섬(靑羅島)이 상전벽해의 모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송도와 청라는 본래 갯벌이었다. 분당이나 일산처럼 살고 있던 터전을 파헤쳐 지은 도시가 아니다. 기존의 신도시들처럼 주택난에 쫓겨 벼락치기로 쌓아 올린 도시도 아니다.

치열했던 산업화 시대의 활력을 잃어버린 대한민국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돌파구였다. 상하이의 푸둥(浦東)지구가 모델이었다. 널리 알려졌듯이 푸둥은 덩샤오핑의 작품이다. 이는 중국 전체가 힘을 몰아주어 건설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송도나 청라는 이와 다르다. 인천의 힘으로 이뤄낸 국제도시다. 앞을 내다보는 비전도, 온갖 장애를 뚫고 헤쳐온 추진력도 인천에서 나왔다. 그래서 인천사람들의 애정어린 눈길이 더 가는 곳들이다.

푸둥과 다른 점이 또 있다. 개발사업이 철저히 시장경제 방식으로 추진돼 왔다는 점이다. 국고나 시민세금을 거의 들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국제도시에 꼭 필요한 주요 인프라들도 선행사업의 개발이익으로 갖춰졌다. 초기의 바다매립도 공사비를 토지로 치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0 여 년 전 송도는 살풍경했다. 사방을 둘러 봐도 음산한 하늘에 모래바람만 얼굴을 때렸다. 한 때는 집값이 크게 떨어져 애물단지취급도 받았다. 왜 아파트만 짓느냐는 논란도 거셌다. 개발이 속도를 내면서 땅값이 오르자 사업지를 회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초기의 비전도, 시장원리라는 추진전략도 적확했다는 생각이다. 최상의 정주(定住)여건(주거, 교육, 의료환경)이 국내외 투자를 유인하는 촉매제가 됐다. 법이나 세금으로 강제해도 서울을 떠나지 않았던 대기업들이 송도로 몰려오고 있지 않은가.

특히 ‘교육특구 송도’는 송도의 크나 큰 강점이다. 채드윅 국제학교나 청라 달튼스쿨은 우리 사회 조기유학 열병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송도를 걷다보면 심심치 않게 외국인들과 마주친다. 송도에는 녹색기후기금(GCF) 등 이미 13개에 이르는 국제기구들이 입주해 있어서다. 명실상부한 국제도시의 면목을 갖춰가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송도국제병원은 소모적인 논쟁에 발묶여 10년째 겉돌고 있다. 긴 안목으로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다.

정기환 前 중앙일보 경인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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