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누가 이들을 소통하게 하겠는가?

이주노동자들은 가족을 떠났다는 이유로 마음의 갈등을 그리고 휴일이 보장되지 못하는 문제로 인한 고용주와의 갈등을 겪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소통을 하고 싶어도 소통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을 노동력으로 보기에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만을 원하는 사장님들의 의식에도 원인이 있을 수 있을 것이고, 배우려고 하지 않는 그래서 스스로를 노예화시키는 이주노동자의 문제도 있을 것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의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산 원곡동이 본당의 주임신부로 제직 중에 이들을 위해서 2001년부터 언어소통에 도움이 되고자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였습니다.

제 자신부터 외국 생활을 하면서 많은 소통의 어려움을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현지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가끔은 어린이 취급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언어장애인이 되는 체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도와주자는 생각으로 한국어 교실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매번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약함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50명~100명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현격하게 출석하는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왜 이들이 출석률이 저조한가를 봉사자들과 함께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원인분석을 해보니, 근본적인 원인은 노동환경과 구조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업을 보면, 모두가 공감하듯이 우리나라의 기업은 일감이 주어지면 주저함이 없이 시간 안에 마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주노동자들은 기본적인 권리도 보장 받지 못한 채, 주어진 일감을 야근과 주일근무를 통해서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주노동자들은 이러한 구조 속에서 도무지 시간을 내어 공부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의 비전을 위해서 노동자는 한국말을 배워야 하고, 기업도 한국말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어떤 노동자가 산재를 당했다고 합니다. 사연인 즉 ‘켜’와 ‘꺼’의 차이를 숙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공장장이 그 노동자에게 ‘꺼’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그 노동자는 ‘켜’라는 말로 알아들어 그 결과 손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의 상담소에는 무료진료소가 있습니다. 1998년도부터 운영해오고 있는데, 이주노동자들은 고된 일로 인하여 외상으로 인해 진료를 받는 이들이 많고, 또한 손이나 신체의 일부가 잘려 정형외과에 입원하는 환자가 많이 있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는 바로 소통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우선은 찾아가는 한국어 교실을 해야 할 것입니다. 즉 노동자들이 모이기 쉬운 곳으로 교사를 파견하여 한국어를 돕도록 해야겠습니다. 둘째는 이주노동자들의 휴일을 보장해주고, 시간을 배려하여 그들이 한국어를 공부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이들을 노동력으로 보지 말고 가족으로 보는 눈을 지녀, 이들을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머무는 나라가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곳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실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동기부여로 한국말을 잘 배워 소통하여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최병조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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