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안되어 2015년이 된다. 분단 70주년을 맞는다. 분단 70년은 우리 민족에게 너무나 억울하고 부당한 고통을 안겨준 비정하고 비정상적인 비극의 긴 시간이다. 이 기간의 아픔을 우리는 지금 너무나 덤덤하게 여기고 있다. 이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먼저 왜 이 70년간의 분단고통이 억울한가를 짚어보자.
1945년 8월 15일은 우리 민족에게 해방의 감격과 광복의 기쁨을 안겨준 날이 아니다. 너무나 부당한 식민지배 36년간의 고통이 그날로 끝장날 것 같지만 실은 그 고통이 또 다른 형태의 구조적 고통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일제식민지배는 참된 해방과 광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분단의 비극으로 바로 이어졌다. 우리는 극심한 혼란기를 겪게 되었고 그 5년 후 한국전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었다.
휴전으로 그 잔인했던 전쟁은 열전상태에서 긴 냉전상태로 이행되었다. 헌데, 냉전의 아픔과 그 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데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긴 냉전기간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정치 세력은 불행하게도 친일ㆍ반공세력이기에 일제식민지배를 온전하게 청산해내지 못했다.
조선의 마지막 총독이었던 아베노부유끼(阿部信行)는 일본이 패망한 날 이렇게 독설을 퍼부었다. ‘오늘 일본이 패전했으나 조선이 이긴 것은 아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뒤 더욱 섬뜩한 예언을 했다. ‘일본은 총과 대포 보다 더 무서운 식민지 교육을 심어놓았다. 조선이 제대로 일어서려면 백년이 걸릴 것이다.’
이 저주같은 예언의 절반은 오늘의 우리 현실을 보면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일본 제국주의가 심어놓은 식민사관과 식민교육의 효력이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식민지교육 덕택으로 한국이 오늘의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보수적 사고와 신념이 지난 육칠년간 이 땅의 지배집단속에서 강고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것으로 남북관계는 더욱 어려워지고 이것으로 정치민주와는 특히 경제민주화는 더욱 후퇴하고 있다. 최근 백색테러집단이었던 서북청년단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 보면, 현정권이 들어서서 역사 후퇴가 단순히 유신시대에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1945년으로 급락하는 듯하다. 이런 살벌한 상황에서 분단은 정상적인 현실이 된다.
그 억울한 분단의 시발도 억울한 민족고통의 시작으로 볼 수 없게 된다. 분단을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현실로 받아드리면서 오히려 분단을 더욱 공고하게 다짐으로 정치경제적 이득을 보려는 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냉전근본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되면서 일제식민지와 분단을 오히려 신의 섭리로 받아드리려 한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다.
냉전과 열전의 60여년을 겪으면서 한때 주적국가였던 소련(러시아)과 중국은 이제 우리에게 화해협력국이 되었다.
또한 36년간 부당하게 우리를 억압ㆍ착취했던 일본과는 20년 만에 우방관계로 진화했다. 그런데 수천년간 같은 민족으로 살아왔던 북한과는 아직도 주적으로 중오하고 섬멸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이같은 증오와 대결을 당연하고 건강하고 정상적인 현실로 믿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비극의 현주소다.
나는 2009년 미국 에모리대학교에서 국제동창상을 받으면서 수상연설을 한적이 있다. 그때 청중에는 김영삼 정부 때 주한미대사를 역임했던 레이니 명예총장과 카터(전 미국대통령) 센터의 핵심간부들이 있었다. 그들 앞에서 나는 분명히 말했다. 1945년 8월, 미국 정부의 사려깊지 못한 성급한 판단으로 한반도가 38선으로 분단되었다고 했다.
그때 우리의 임시정부의 의견이나 미국 내 한반도나 동아시아 전문학자들의 의견도 참고함이 없이 성급하게 결정함으로써 수천년간 한민족으로 살아온 우리가 억울하게 분단되었다고 했다. 레이니 대사는 조용히 경청해주었다. 미안해 하는 듯 했다. 그는 우리 민족의 억울한 분단고통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 드문 주한미대사였다.
지금 힘이 빠진 미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일본의 힘을 키우려고 한다. 이런 때 일본의 극우세력과 미국의 네오콘의 공격적 반평화적 정책에 뜨거운 박수를 치고 싶은 한국의 친일수구세력의 준동이 심히 걱정된다. 내년에는 기필코 한반도 평화의 기운이 치솟아 온민족과 온국민이 해방의 감격과 광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역사적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도한다.
한완상 前 교육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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