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박물관, 수원화성 착공 220돌 기념 특별기획展

농업개혁의 산실 ‘수원화성의 역사’ 한눈에

▲ 수원화성박물관은 정조의 화성 축성을 계기로 수원이 조선시대 이후 우리나라 농업개혁의 중심도시임을 보여주는 ‘정조시대 농업개혁의 산실, 수원화성’ 특별전을 내년 2월1일까지 개최한다.

정조는 1794년(정조 17년) 1월 화성을 쌓기 시작했으나 심한 가뭄으로 전국에 기근이 들자 같은 해 11월 돌연 공사를 중단했다.

당시 정조는 신하들에게 내린 윤음(유화성성역동공제신윤음)에서 “흉년이 들면 토목공사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말을 예기(禮記)에서 들었고 조정의 정자를 치장하지 않는다는 말을 춘추전(春秋傳)에서 보았다”며 공사 중지를 명령했다.

수원화성박물관의 수원화성 착공 22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농업개혁의 산실, 수원화성’이 열린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정조가 화성 축성을 일시 중지하고 백성의 민생 대책을 제시하는 일종의 담화문인 윤음 원본이 공개된다.

이 문서는 가로 563㎝, 세로 36㎝ 크기로, 흉년으로 인한 민간의 실태, 국가가 어려운 때 군주의 도리, 화성 주민의 민생 방안 등으로 구성돼 있다.

농촌진흥청이 올해 이전한 뒤 개최되는 이번 전시회는 정조가 화성을 축성하며 시행한 농업정책, 이후 수원이 농업연구의 중심지가 되는 과정 등을 보여주며 수원시가 조선시대 이후 농업의 중심도시라는 역사성을 증언한다.

전시회에는 정조 윤음 원본을 전시장 중심에 배치하고 한글 번역 전문을 함께 게시했다.

정조는 윤음에서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왕도(王都)로부터 아득한 변방에 이르기까지 늙은이, 어린이, 부녀자, 절름발이, 귀머거리, 벙어리가 모두 나의 자식이다”며 “성역은 10년을 끌어도 괜찮지만 백성은 하루 굶고 이틀 굶어 한 달간을 참게 해선 안 된다”고 했다.

 

▲ 18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농업개혁의 산실, 수원화성’ 특별전시회에 공개된 정조의 화성성역을 중단시키는 윤음 전문을 관람객들이 읽고 있다.

또 화성 신도시 경제방안으로 “내년 봄 북성(장안문) 밖 척박한 땅을 곡식 100곡 정도 뿌릴 수 있는 경계를 정하라”고 개간을 지시하고 “한 두 해 지나지 않아 삽을 메고 모여들어 도랑을 터서 물을 내려 보내는 아름다움을 보게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경지정리를 하며 도랑을 팔 때 깊이를 살펴 한 길, 또는 반 길 가량 파고 임금을 날짜로 계산하지 말고 져 나른 짐을 기준으로 하되 푯말을 세워 원근을 계산해 차등을 두라고 하는 등 매우 구체적인 지시까지 하고 있다.

윤음의 내용은 길지만 그 안에는 정조의 백성에 대한 사랑과 군주의 덕목, 산업 진흥에 대한 식견 등이 담겨 있어 감동을 준다.

이 밖에도 정조가 수원의 유생과 글로 소통한 농사 시무책 문답, 정조가 암행어사에게 흉년에 복지정책이 잘 구현되고 있는지를 살피라는 봉서(封書) 등의 원본도 볼 수 있다.

특히 전시회에서는 주요 문서의 전문과 주요 부분을 현대어로 쉽게 풀어쓴 한글 번역문과 해설이 곁들여져 관람객들의 몰입도를 더할 예정이다.

한편 지난 달 30일 개막한 전시회는 내년 2월1일까지 열린다.

김예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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