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 칼럼] 인간사회에 기여한 머릿니

사람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된 곤충으로 인체에 붙어살면서 겨울이 되면 더욱 극성을 부리는 벌레가 있다. 바로 ‘이(蝨)’라는 곤충이다. 이는 사람 몸에서 피를 빨며 가려움증, 피부질환, 염증을 유발해 구제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곰곰이 집어보면 사람에게 기여한 바도 있다.

다른 동물에도 특유의 기생곤충이 있듯이 사람에게만 기생하며 사람의 피만을 먹고사는 ‘이’가 있는데, 여기에는 머릿니(頭蝨, 두슬), 몸이(옷이), 털이(사면바리)등 세 가지가 있다.

세 가지 모두가 각각 생활 터전을 달리하는데, 머릿니는 머리카락에, 몸이는 속옷 솔기에, 털이는 음모에 알을 낳아 증식을 하며 인근 피부에서 피와 체액을 빨아먹고 산다. 털이는 완전 다른 종이지만, 머릿니와 몸이의 경우 생활상에 차이가 있지만 실험실에서 어렵게 서로 교배가 가능하기는 한 정도로 변화된 사이이다.

곤충의 알을 충란(蟲卵)이라 하는데, 우리 인간과 각별한 사연을 쌓아온 ‘이’가 낳은 알에 대해서는 유독 ‘서캐(nit)’라는 별칭을 주어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별한 대우를 하고 있다. 머릿니 암컷은 하루에 10~20개씩 40여 일간 알을 낳고 죽는다.

서캐가 절반가량 부화가 된다하여도, 머릿니 한 마리가 400여 배 이상 증식되는 놀라운 결과다. 필자는 초등학생의 한명의 머리에서 2천 마리가 넘는 머릿니를 빗겨낸 적도 있다.

털이는 성병으로 분류된다. 음모 기저부에 살짝 파고 들어가 날카로운 발로 헤집고 다니면 그 가렴증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하지만 아직도 완전히 박멸되지 않고 있다.

여성 감염자에서는 그 증상이 남성만큼 심하지 않아 충을 보유한 매춘여성을 통해 감염 및 재감염이 계속 반복 유지되기 때문이다. 몸이의 경우 위생상태가 불량한 집단생활자나 노숙인 등에서 발견되는데, 그 감염률이 낮고 치료도 쉬운 편이라 국내에서는 거의 근절됐다.

사람에 기생하는 ‘이’ 감염증 중에서 현재까지 감염률이 높아 가장 문제되는 머릿니 감염은 선·후진국을 불문하고 전 세계 유·초등학령 아동에게 매우 높은 감염을 보인다. 성인에서는 드물지만 집단생활을 하는 경우에는 성인에서도 한번 성립된 감염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

필자는 1980년대 초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시달리고 있는 초등학생들의 머릿니를 구제하느라 10수년간 감염조사를 하고 약을 만들어 집단치료에 매진한 적이 있다.

머릿니를 없애려 노력을 하다보니 아이러니 하게도 ‘머릿니가 참 지혜롭고, 인간사회에 이로움을 준 면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머릿니는 기원전 미라에서도 발견이 된다. 사람목숨을 위협하는 감염질환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지만 머릿니는 계속 살아남아 사람과 함께 역사를 같이하고 있다.

머릿니는 사람의 피만을 먹고 나름대로의 영역을 지키며 산다. 머릿니를 아랫도리에 가져다놓아도 그곳에서는 살지 못하고 머리로 다시 기어 올라온다. 털이나 몸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나 자신에게 맞는 생활환경에서 욕심내지 않고 살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부모 자식 간 불화가 심한 요즘 세상에 머릿니가 주었던 혜택은 그립기까지 하다. 어머니가 아이 머리를 품안에 두고 머리카락을 샅샅이 훑어가며 서캐를 일일이 제거해낼 때 쌓아진, 깊고 확실한 모정은, 아이에게 부모를 배신하거나 학대할 만한 정서질환에 입추의 여지도 허락하지 않았었다.

나는 감히 ‘사람다운 인간세상을 만드는데, 머릿니가 기여한 바가 확실했다’고 고백해야겠다. TV에서 어미 침판지가 새끼의 털을 골라주는 장면을 보고 있느라면 원시적인 편안함이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도 그 때가 그립기만 하다.

배기수 경기도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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