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도 저물고 있다. 1910년은 한일병탄의 슬픈해다. 1919년은 3.1독립운동의 해다. 1945년은 껍데기 해방과 가슴 아픈 민족분단의 해다. 1988년은 올림픽의 해다. 그렇다면 2014년은 무슨 해로 기억될까? 한마디로 세월호 참사라는 역사적 트라우마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왜 그런가?
이 참사가 단순한 대형교통사고라면 역사에 길이 그리고 깊이 인각되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는 대연각이나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과 질적으로 다르다. 단순한 대형사고는 효율성의 차원에서 다룰 수 있고, 기술적으로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세월호는 정당성의 차원에서 다뤄야 할 심각한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을 가슴 아프게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국가와 시장의 존재이유를 온몸으로 묻게 되었다. 배가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실상을 알게 된 것이다. 시장의 갑들과 국가의 갑들이 힘모아 흉칙한 갑질을 해댄 것임이 드러났다. 그 억울한 죽음은 관피아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배와 함께 시커먼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수백명의 생명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국가는 헌법34조의 명령을 이행하지 못했음도 확인했다.
지극히 무능한 정부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간 온갖 정치적 비리와 비행을 저지르는 일에는 그토록 민첩하게 행동했던 국가의 갑들이 국민생명을 몰살로부터 구해내는 일에는 그토록 무력하고 무능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 참상을 애타게 지켜봤던 국민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국가는 어디 있는가?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가 과연 민주국가인가라는 질문이 그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터져 나오게 되었다. 그러기에 세월호는 역사분수령적 사건이요, 결코 세월흐름으로 잊혀질 수 없는 심각한 역사적 사건이다.
1912년 4월 영국의 세계 최대, 최고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해 1천500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침몰했다. 이것도 단순한 해양사고가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웅장하고, 가장 빠르고, 가장 화려한 대영제국의 배가 얼마나 효율적이면서도 생산적일 수 있냐를 세계에 과시하고 싶었던 영국산업혁명의 진보적 낙관주의가 침몰하고만 것이다. 그러기에 역사의 참사였다.
효율성의 극대화로 한국사회를 경제강국으로 이끌 수 있다는 신화를 확신했던 자들이 온갖 편법을 동원한 결과로 빚어진 사건이 바로 이번 세월호사건이다. 분단 70년간 문민권위주의와 군사권위주의가 성장제일주의의 가치 아래, 국민들을 일사불란하게 일방적으로 동원하고 호도하면서 불도저식 무소통의 정치를 강행하다가 만난 참상이 바로 세월호 사건이기도 하다.
이 역사적 트라우마가 오래 기억되는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국가의 갑들의 대응이 참으로 한심했다. 생명을 구하는데 그토록 무능했던 정부가 억울한 희생자들을 대하는 일에 그토록 무관심하거나 잔인할 수 없었다. 먼저 정부 지도층의 위선이 두드러진다.
대통령이 희생자들의 아픔에 동고하여 일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눈물의 진정성이 곧 드러나고 말았다. 무능한 갑들의 이 같은 유능한 연기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게다가 일부 극단 세력은 서슴치 않고 희생자들의 상처에 소금과 황산을 뿌리듯 비난과 욕설을 퍼부었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비정한 몰상식을 묵인하거나 방조했다. 정말 화가 나는 것은 정치권마저 여야 가릴 것 없이 헌법 34조를 무시한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의 편을 들어 희생자들을 배상하지 않고 보상하기로 합의했다. 단 한 생명도 구해내지 못한 정부가 그 무능과 책임을 진실로 통감하다면 마땅히 배상의 차원에서 희생자들을 치유해야 할 것이다.
억울한 고통이 쌓일수록, 역사분수령적 사건은 계속 터저 나오게 될 것이다. 분단 70년의 민족고통에 더하여 세월호의 국민고통이 우리를 옥죄일지라도 우리는 보다 따뜻한 민주질서가 세워질 수 있음을 지난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그때야 세월호의 트라우마는 비로소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2014년 세월호의 해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한완상 前 교육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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