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의 졸업식장에서 학생들이 차례로 졸업장을 받고 있었다. 순서가 진행되는 것을 바라보는 한 축하객에게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어느 학생이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한 손으로 졸업장을 받고, 총장에게 악수도 받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축하객은 “세상도 많이 변했군, 저렇게 건방진 학생도 있으니. 한 손으로 졸업장을 받다니 이 학교는 4년 동안 무얼 가르쳤단 말인가?”라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재학생이 말했다. “그게 아닙니다. 저 분은 한 팔을 잃고, 대신 의수를 하고 4년 동안 훌륭하게 학교를 다닌 학생입니다” 그러자 보이는 대로 비난했던 축하객은 얼굴을 붉히며 함부로 말을 한 것을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던가? 진실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보이지 않는 대부분의 상황을 무시하고, 보이는 몇 가지의 현상으로 비판하고 비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언젠가 모 개그 프로그램에서 한 개그맨이 즐겨 쓰던 말이 있다. “해 보셨어요? 해 보지 않았으면 말을 마세요” 느끼고 경험해 봤느냐는 말일 것이다. 순간 나타나는 현상으로만 평가하지 말고, 그 과정 속에 녹아 있는 진실을 알고 있는냐는 물음일 것이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남을 비방하는 것은 살인보다도 위험한 일이다. 살인은 한 사람밖에 죽이지 않지만, 비방은 세 사람을 죽인다. 비방하는 사람 자신,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 그리고 비방 당하는 사람이다”
비판에는 세 가지 특성이 있다. 비판은 순환성이 있다. 비판받은 사람은, 비판하는 사람의 비판거리를 찾아 다시 비판한다. 비판은 비난과 저주를 낳는다. 그 결과 순식간에 공동체의 행복이 깨지는 것이다. 비판은 중독성이 있다.
비판하다보면 부정적인 시각이 발달하여, 숱한 아름다운 것은 보지 못하고 비판할 것만 보게 된다. 결국 비판에 중독되어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비판은 저주성이 있다. 비판하면 무엇보다 나의 행복이 깨지고 만다. 비판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는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기에 더욱 마음이 황폐해지고, 행복을 떠나 불행 가운데 사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렇게 강조한다. “불행하게 살고 싶지 않거든 비판하지 말라!”
요사이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가 서로를 비판하고 비방하는 시대인 듯하다. 비판, 비방하는 사람도 결코 남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면서도, 우리는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때문에 비판이 순환하여 나에게로 돌아와 불행한 삶을 지속하게 되며, 비판에 중독되어 부정적인 사고와 언어로 다른 이들과 나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나아가 비판의 저주를 쏟아내기를 주저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헤아리는 것은 도로 나도 헤아림을 받게 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생활을 비판하지 말고, 나 자신은 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실수와 실패를 통하여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담습하지 않는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비판하더라도 그 실수는 되돌릴 수 없다. 또한 비판 받는 당사자에게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필자는 세상이 흔한 말로 비판하는 ‘개독인’이다. 거기에 더하여 그토록 폄하 당하는 ‘먹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리 모든 기독교인들을 폄하하지 마시라. 이 나라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세상이 알고 있는 그런 사람들도 아니며, 그런 삶도 살지 않는다. 그 중의 일부가 부끄러운 삶을 살고 행동을 일삼지만, 우리 기독교인들도 그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나아가 일생을 진리를 위하여 몸 바치며 희생하기로 결단한 목사들은 더더욱 그러하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간다. 심지어는 자녀들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며 이 땅에 사랑이 뿌려지고, 정의가 바르게 세워지며, 진리가 널리 전파되기를 소원하며 살아간다. 나름 할 수 있는 최선의 선을 추구하며, 그것을 세상에 심으려고 애를 쓰며 살아가는 것이 목사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며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성탄시즌이다. 사랑이 회복되고, 분쟁이 가라않고, 분열이 화합하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분 내며 비판하고 평가하던 소리가 가라않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Merry Christmas’가 되기를 소원한다.
이즘에 목사인 필자는 이렇게 기도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평화와 진리를 주셨듯이, 목사인 나도 평화를 진리를 나누는 삶을 살게 하소서!”
이길용 이천 새무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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