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도시에 ‘힐링·문화 옹달샘’
도서관은 이제 책만의 공간을 넘어 인생을 즐기고 느끼는 행복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각종 문화 행사가 열리고, 시민의 평생교육이 이뤄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도서관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과 임산부에게는 도서 택배 서비스를, 도서관과 거리가 먼 도서지역 시민에게는 순회문고 서비스를 선사한다.
또 다문화 가정 시민에게는 각 국가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은 책만을 별도로 소장 중인 다문화 자료실을 제공한다. 도서관은 시민의 꿈과 미래를 품는다.
취업준비생에게는 조용히 공부를 할 수 있는 열람실을, 아동에게는 동화책 등 아동도서만을 모아놓은 어린이 자료실을 선물한다.
도서관이 정적의 공간이라는 인식은 이제 금물이다. 시민이 직접 찾아가는 도서관도 이제 옛 이야기이다. 도서관은 오늘도 시민이 요구하는 것을 끊임없이 연구하며, 발전해 가는 중이다.
도서관은 시민의 휴식 공간이자, 살아있는 지식의 창고로서 시민의 품을 향해 한발씩 다가가고 있다.
30대 직장인의 ‘도서관 나들이’
1월 11일 오후 2시께 인천중앙도서관. 지난해 서울의 한 무역회사에 입사한 이승훈씨(30·인천시 남구 용현동)는 무역 용어 사전을 찾기 위해 중앙도서관을 찾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4년 만에 도서관을 찾은 이씨에게 중앙도서관 입구의 풍경은 다채롭고 생기가 넘쳐 흐른다.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벤치에 앉아 사색에 잠긴 듯 책을 읽는 청년, 책을 손에 들고 나란히 정원 길을 걷는 연인, 동화책 내용을 부모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아이의 웃는 모습까지 각양 각층의 다양한 시민이 입구에서부터 붐빈다.
도서관에 들어선 이씨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로비의 한쪽 벽을 가득 메운 예술 작품이다. 책으로 가득 채워질 법한 도서관의 벽이 하얀 한지 위에 다양한 글씨체로 적힌 서화로 채워져 마치 미술품 전시관으로 착각하게 한다. 반대쪽에 있는 1층 어린이 자료실에는 동화책에 푹 빠진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씨는 5만여 권에 달하는 아동도서에 둘러싸여 책을 읽는데 열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 도서관에 가자고 어머니를 조르던 옛 추억이 떠오르는 동시에 아이를 낳으면 도서관에 같이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층에 올라선 이씨는 로비를 둘러싼 각종 신문을 천천히 넘겨보는 시민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신문 삼매경에 빠져든다. 지역 일간지부터 전국지와 경제지 등 다양한 신문을 예리한 눈으로 살펴보는 동안 이씨는 자신도 모르게 지식인이 된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정기 간행물 자료실 옆에 있는 다문화 자료실은 다문화 가정의 시민뿐만 아니라, 각종 어학 공부를 하는 시민들로 가득하다.
지난 2010년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을 위해 마련한 중앙도서관 다문화 자료실에는 베트남, 중국, 태국, 필리핀 등 10여 개 국가의 도서 6천여 권이 보관돼 있으며, 현재는 어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일반 시민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됐다.
3층에 다다른 이씨는 지난해 취업하기 전까지 2년 동안 취업준비생으로 지냈던 시간을 떠올렸다.
열람실 곳곳에 책을 읽는 시민들 옆으로 취업준비에 열중인 청년들의 모습이 이씨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취업하기 전까지 매일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대학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던 이씨에게 도서관 열람실은 간절함과 애처로움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4층에 도착한 이씨 앞에 드디어 중앙도서관을 대표하는 30여만 권의 도서가 저마다 육중함을 뽐내며 눈을 사로잡는다. 이씨는 자신도 모르게 이 많은 책 사이에서 어떻게 무역 용어 사전을 찾을까 걱정부터 했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도 잠시, 자료실 입구에 배치된 도서 검색 컴퓨터를 통해 이씨는 필요한 도서의 청구기호를 찾았다.
청구기호는 도서마다 가진 일종의 주소로, 도서관에 보관된 도서는 이러한 청구기호를 하나씩 갖고 있다. 청구기호 앞의 숫자는 도서의 성격 및 장르 등을 의미하며, 그 뒤에 나열된 글자 등은 지은이와 책의 제목 등을 뜻한다.
이씨는 찾으려는 도서의 청구기호를 영수증 크기의 종이에 출력하자 수십만 권의 책에서 단 10분 만에 필요한 책을 찾았다. 도서 대출을 하는데도 별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모든 회원 정보가 데이터베이스로 정리돼 있어 RFID 인식기에 책을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도서 대출은 쉽게 끝났기 때문이다.
이씨는 1시간여 동안 중앙도서관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새삼 도서관이 시민을 위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다. 빠른 도서 대출과 반납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무인 대출·반납기, 여러 사람의 손을 타기 때문에 생긴 더럽다는 인식을 없애고자 설치된 책 소독기 등은 시민의 편의를 위해 준비된 장치이다.
여기에 도서관을 찾은 어린이를 위해 아동도서만 따로 배치한 어린이 자료실과 여러 국가의 책을 따로 소장해 놓은 다문화 자료실 등도 책을 읽고자 하는 시민을 위해 별도로 마련된 자료실이다.
이씨는 “책으로 가득하다는 생각 때문에 자칫 딱딱한 분위기의 도서관을 떠올리기 쉬운데, 막상 와보니 넓은 개인 서재에 온 것과 다를 바 없었다”며 “단순히 책을 빌리러 도서관을 오는 게 아니라, 하나의 시민 휴식 공간으로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힐링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책의 공간’서 ‘시민의 공간’으로
인천지역 내 공공 도서관과 작은 도서관은 200여 곳에 달한다. 여기에 각 대학 도서관과 일선 초·중·고교에 있는 학교 도서관을 합치면 약 700여 곳에 달하는 도서관이 있다.
올해까지 지역 내 도서관에 보관될 도서 수는 400만 권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유네스코 지정 책의 수도과 맞물려 인천시와 인천시교육청의 도서관 활성화 사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지역 시민의 독서량은 매우 저조한 현실에 봉착했다. ‘2013 국민독서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지역 성인 연평균 독서량은 8.9권으로, 전국 평균 9.2권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특히 미국 등 서구 선진국의 성인 월평균 독서량이 6권 이상인 현실을 고려하면, 책의 수도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도서관이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았고, 도서관이 변모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됐다.
이제 도서관은 책의 공간으로 머무르기보다는 다양한 사업과 행사를 통해 시민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동도서관, 순회문고, 도서 택배 서비스는 시민이 도서관을 찾아오는 것이 아닌, 도서관이 시민을 찾아가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린이 자료실, 다문화 자료실, 작은 도서관 등은 특정계층이나 소외계층도 얼마든지 책을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도서관만의 공간이다.
평생교육, 북 콘서트 등 문화행사, 생태학습장 운영, 독서치료 등 사업은 단순히 책의 공간이 아닌, 시민의 휴식·문화·교육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책의 수도에 걸맞은 인천을 위해 도서관은 오늘도 시민의 품으로 달려가고 있다.
글·사진=김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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