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졸업유예 NG족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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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학위수여식이 열린 지난 23일, 신촌 캠퍼스엔 이런 현수막이 내걸렸다. ‘연대 나오면 뭐 하냐… 백순데…’. 현수막엔 ‘사학과 08 황도영(27ㆍ백수)’이란 이름까지 쓰여 있었다. 청년실업 등 졸업 이후의 암울한 현실을 풍자한 글이다.

황도영씨는 임용시험을 준비 중이라는데 친구들이 격려하기 위해 ‘재밌는’ 현수막을 걸었다고 한다. 지난주 졸업식을 가진 대학가 곳곳엔 ‘백수의 길에 접어든 선배님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같은 현수막이 나부꼈다. 그냥 웃어넘기기엔 씁쓸한 풍경이다.

올해도 수많은 대학 졸업생들이 사회로 나왔지만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죽하면 인문계열 졸업생의 90%가 논다는 ‘인구론’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을까.

졸업생에 취업 재수생, 삼수생, 사수생 등을 합치면 취업을 해야 하는 사람은 해마다 늘지만 취업문은 점점 더 더 더 좁아지고 있으니 이 같은 상황을 자조하는 현수막이 내걸릴 만하다.

웃지 못할 또 하나의 풍경은 졸업장을 집에서 택배로 받는다는 것이다. 실제 서울 H대 정치외교학과 과사무실은 올해 38명의 졸업생 중 12명의 학생에게 택배로 졸업장을 보내줬다.

취업이 된 상태에서 졸업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보니 대부분 취업 실패를 이유로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학생들은 학사복과 학사모를 미리 빌려 졸업식에 앞서 기념 사진을 찍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지 않은 주말에 교정을 찾아 사진을 몇 장 찍고 정작 졸업식에는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졸업을 미루는 ‘NG(No Graduationㆍ졸업유예)족’ 또한 가슴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NG족은 졸업 논문이나 영어 성적을 제출하지 않아 졸업이 아닌 ‘수료’ 상태로 남거나 1~2학점 등 최소 학점만 남겨놓는 방법으로 졸업을 미루고 있다. 이들은 2년째, 3년째 계속 졸업을 유예하다 보니 졸업식이 언제 열리는 지 관심도 없다. 졸업유예 신청자는 2011년 8천270명에서 2013년 1만4천975명, 지난해 1만8천570명으로 늘었다.

NG족이 늘면서 대학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재학생이 늘면 교수 1인당 학생 수 등 각종 대학 평가에서 불리한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에선 졸업을 하지 않고 도서관 자리만 차지한다며 재학생들이 항의하는 등 NG족이 학내 갈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갈 곳 없는 서글픈 NG족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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