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그 함마르셸드(스웨덴ㆍ재임 1953~1961)는 2대 유엔 사무총장이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국 정찰기가 중국(당시 중공)에 추락했다.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억류됐다. 유엔은 관련자 송환을 촉구하는 결의안 906호를 채택했다. 하지만, 비회원국인 중국은 꿈쩍도 안 했다. 그가 개인 자격으로 중국을 찾았다.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와 담판을 벌여 전원을 구해냈다. 이른바 북경 법칙(Peking Formula)이다. 그는 역대 최고 총장으로 평가된다. 마지막도 콩고 분쟁 해결을 위해 이동 중 추락한 비행기 속이었다. 역사상 최초로 사후 노벨 평화상이 주어졌다. ▶쿠르트 발트하임(오스트리아ㆍ재임 1972~1981)은 4대 유엔 사무총장이다. 독일 장교 복무와 유태인 학살 연관 논란에 휘말렸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회원국의 요청이 있을 때만 개입한다는 원칙으로 행동했다. 공개적으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내 역할은 무엇보다 의례용 역할일 뿐”이라며 자조했다(1975). 하지만, 권력욕은 대단했다. 부정적 기류 속에서도 3선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이후 국내 정치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1986년 오스트리아의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그를 초청한 주요 국가들은 없었다. 업적은 없었고 권력욕만 많았던 총장으로 기억된다. ▶반기문(대한민국ㆍ재임 2007~현재)은 8대 유엔 사무총장이다. 분단국 출신이라는 악재를 성실성으로 극복했다. 업적도 뛰어나다. 기후변화, 핵확산 방지, 새천년개발목표 달성 등을 이뤄냈다. 2011년 있었던 연임 통과 과정이 인상적이다. 안보리와 지역그룹이 만장일치로 연임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총회는 192개국의 우레와 같은 박수로 연임을 확정했다. 분명 발트하임보다 함마르셸드 쪽으로의 호평을 받고 있는 반 총장이다. ▶그런 반 총장을 한국 정치가 들쑤시고 있다. 서로 자당 대권 후보라며 추켜 세우고 있다. 여론조사도 한몫한다. 한길 리서치의 2월 정기 조사에서 32.6%로 1위를 기록했다. 유엔 사무총장 출신의 대통령이 나쁠 건 없다. 다만, 걱정스러운 건 한국 정치의 전과(前科)다. ‘안철수 현상’ ‘고건 대망론’ ‘40대 이인제론’…. 모두 예선에서 키우다가 본선에서 패대기친 역사다. 하나같이 정치 유랑자를 생산해 냈다. 어느덧 공식으로 자리 잡은 한국 정치의 역사다. 반 총장에게 대권(大權)을 양보할 정파(政波)가 있겠는가. 친박ㆍ비박, 친노ㆍ비노. 그렇게 아량 있는 정치집단들이 아니다. 괜스레 반 총장의 3선(選) 가도만 막아서는 듯해 걱정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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