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실버 운전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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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어머니는 76세인데 운전을 하신다. 시내 운전은 물론 지인들과 인근 나들이도 자주 나가신다. 친구는 어머니가 운전을 할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차를 같이 타봤는데 차선을 밟고 달리는가 하면,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뒤늦게 출발하기 일쑤다. 이젠 운전대를 놓으라고 말해도 “운전경력이 30년 넘는다”며 화를 내신다. 그 어머니는 지난해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무난히 넘기고 면허증을 갱신했다.

‘실버 운전자’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고령 운전자가 늘어나고 교통사고 발생률 또한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엔 74세 운전자가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액셀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60세 남성을 치어 숨지게 했다. 3월엔 85세 운전자가 도로와 인도 사이의 안전 펜스를 뚫고 상가 건물로 돌진한 사고도 있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교통사고는 지난 2009년 23만1천990건에서 지난해 22만3천552건으로 감소했지만, 65세 이상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1만1천998건에서 2만275건으로 5년 사이 배 가까이 늘었다. 노인이 되면 집중력과 신체 반응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실버 운전’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고령 운전자들이 운전 조작 실수나 교통 상황을 잘못 판단해 내는 사고가 늘면서 경찰도 긴장하고 있다.

현재 65세 이상 운전자는 233만여명에 달하지만 내년엔 25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5년에 한 번 시력검사 위주의 적성검사를 하는 것 외에 고령 운전자의 운전능력을 가려내는 대책이 없다. 경찰이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고령 운전자에게 교통비 등을 지급하는 ‘운전면허 반납제’ 도입을 여러 차례 추진했지만 고령 운전자들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

일본은 70세를 기준으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면허증 갱신 기간을 단축하고, 75세 이상 운전자는 판단력 등 인지기능검사를 의무화 하고 있다. 영국은 70세 이상 운전자가 면허를 갱신하려면 3년마다 의사 소견이 첨부된 건강검진서를 내야 한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무대책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도 연령별 운전면허 관리를 강화하고, 인지기능 검사 등을 의무화해야 한다. 고령 운전자 차량에 실버마크를 붙이도록 하는 ‘실버마크제’를 활성화해 이들 차량에 대해 양보와 감속운전을 하고, 고령자 운전에 도움이 되도록 도로환경 정비 등 교통인프라 구축도 시급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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