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천년의 미소, 영원의 미소

함께 원력을 세우고 수행정진하는 좋은 인연을 지닌 분들과 내포지방 제일의 명당을 찾았다. 고려부터 조선 후기까지 가야사라는 사찰이 있던 터이다.

가야산 석문봉을 주봉으로 옥양봉을 비롯한 서너 봉우리의 능선과 좌우의 능선들이 가야사 터를 향해 모여져 있다. 가야사 왼쪽 좌청룡능선은 손가락을 펼친 듯 여러 작은 능선들이 겹겹으로 가야사 터를 에워싸고 있다. 굉장한 자연의 에너지(氣)가 모여 있다. 땅의 풍수는 그렇다 하자.

그 가야사 터에서 진정한 마음의 풍수를 생각하였다. 성현에 대한 믿음과 참회, 그리고 성불을 위한 정진과 회향의 뜻을 하나로 모은 가장 아름다운 마음인 이 보리심은 어떤 마음일까? 이 보리심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은 나와 남을 함께 이롭게 하고 내가 있는 이 세상이, 이 법계가 해탈세계가 되게 하는 일이다.

이 내포지방은 백제불교가 융성했던 곳으로 덕숭산, 가야산, 상왕산에 걸쳐 수덕사, 개심사, 보원사터, 가야사터, 서산마애삼존불 등의 뛰어난 유적이 펼쳐있다.

우리 일행은 인간미 넘치는 천년의 미소가 그리워 용현리 마애삼존불을 찾았다. 이 삼존불은 산 속 깊이 있어 찾아오는 이도 없었고 알려지지도 않았다. 부여 박물관장을 지낸 홍사준 선생이 보원사지를 발굴하던 중 마을의 나무꾼들을 통해 마애불에 대해 알게 되었다. 1959년의 일이다.

용현리 마을에는 마애불과 관련한 소박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웃고 있는 산신령이 가운데 있고 그 산신령 오른쪽에 있는 한 부인이 다리를 포개고 앉아 볼에 손을 대고 다른 부인을 놀리자 왼쪽에 있는 다른 부인이 약이 올라 손에 돌을 쥐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가운데 부처님과 좌우의 보살상의 모습을 시골마을 나무꾼들은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쾌하고 넉넉한 미소를 머금은 부처님상과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의 왼쪽의 보살입상, 그리고 천진난만한 소년의 미소를 머금은 미륵반가상은 백제 특유의 온화함과 여유를 느끼게 해준다.

이 마애불은 동동남 방향으로 모셔져 있는데 아침 해가 비칠 때가 가장 밝고 평화로운 미소를 느끼기에 좋은 시간이다 한 낮에는 근엄하며 저녁에는 은은한 미소를 띤다. 백제인들은 독특한 불교문화를 창조하고자 했으며 좀 더 대중적이며 친근한 종교를 만들고자 하였다.

그 백제불교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 이 마애불상이다. 누구든지 쉽게 다가가서 의지하고 친숙할 수 있는 부처님상이다. 사실적이며 인간적인 모습의 불상은 우리의 삶과 가까이 존재하는 살아 있는 종교의 의미를 되새겨 준다.

이제 이 미소가 천년을 넘어 만년의 미소가 되고 영원의 미소가 되어 미래에도 살아 있는 우리 민족의 미소가 되기를 염원한다.

우리 불교에서는 일체 존재의 근본이며 주인인 이 진여불성은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차원의 진리근본 마음세계라고 한다. 참 진리는 영원하고 그 운영의 법칙은 언제나 공평하며 일체의 억지가 없는 자연스런 것이다. 그것이 이치이며 순리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무량한 행복의 길을 함께 가야 한다. 우리는 외롭지 않아야 한다. 원래 모든 생명은 이 무시무종의 영원한 우주의 본래 진리 속에 있기 때문이다.

중생제도의 원력을 세우셨고 진리의 화신이신 성현에 의지하여 우리는 현재의 이 한순간이 곧 영원의 진리와 하나가 되게 하여야 한다. 그것이 종교의 진실성이고 참다운 기도이며 정진수행이다.

우리 일행이 마래삼존불을 향해 갈 때 구름이 끼어 흐린 날씨였다. 마애삼존불에 도착할 무렵 밝고 따스한 햇볕이 마애불을 향해 잠깐 비추었다. 그때 우리는 분명 역력히 보았다. 천년을 간직한 백제의 미소를! 영원하여야 할 우리민족의 자존적 미소를!

인해 스님 진불선원 주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