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해 경기예총 회장
“경기예총의 존재감과 위상이 너무 추락했다. 밖으로는 예산 부족, 안으로는 밥그릇 싸움이 문제다. 앞으로 회원 6만여 명의 자긍심은 높이고, 삶에 지친 도민을 위로하는 단체가 돼야한다. 경기도의 불합리한 예산 집행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내겠다.” 지난 3월 취임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경기지회(이하 경기예총) 김일해 제19대 회장의 말이다. 취임 후 두달여가 흐른 지난 6일, 김 회장의 어조는 담담했지만 단호했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경기예총의 현실을 자성(自省)하며 대책을 제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평생 화가, 미술인으로 살아왔다. 경기예총 회장직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A 그림만 그렸다.(김 회장은 대한민국 청년비엔날레 운영위원장, 경기도미술대전 심사위원, 수원대 미술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그러던 중 수 십 년간 내려온 우리나라 미술계 병폐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사후에 그림 좀 팔린다고 화단이나 후배를 돌아보지 않은 선배, 화가로 기록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3년 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선거에 출마했었다. 선출되지 못했지만, 당시 선거 과정을 지켜본 경기예총 관계자 몇분이 ‘그 의지, 아이디어, 마인드를 미술협회에만 적용하지 말고 예총에 적용해 바꿔보자’고 적극 제안했다.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내가 출마한다는) 소문이 났다. 이미 발을 담근 상태가 됐다. 당선이 되든 안되든 유세를 통해 내 뜻이 전달돼 조금의 변화라도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출마했고, 뽑혔다. 지금도 내 마음은 같다. 조금의 변화라도 이뤄지길, 역량있는 예술인이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기를 바란다.
Q 경기예총, 밖에서 봤을 때와 많이 달랐을 것 같다.
A 참 지친 사람들이 많은 시대다. 경기예총의 회원(예술인)은 문화예술을 공유하며 도민에게 위안이 돼야 한다. 그런데 안을 들여다보니 전혀 역할이 없다. 서로 밥그릇 싸움하기 바쁜 형국이다. 그 와중에 경기예총은 음악, 미술, 무용, 국악, 연예, 영화, 문인 등 10개 회원 단체에 정해진 경기도 지원 예산을 그대로 받아 지급하는, 마치 ‘퀵서비스’와 같다. 회원 단체 중 힘없는 곳은 도 지원 예산을 받지 못하는, 경기예총은 조정 기능조차 없는 불합리한 구조다. 이에 제일 처음 ‘화합’을 강조했다. 예술인은 모두 동업자다. 예술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만큼 함께 공통된 목표를 향해 가야 한다. 개인의 발전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단체(경기예총)에 와서 개인의 것을 찾으려고 하면 안된다. 조금 약하고 나서지 않는 다른 회원에게 양보와 배려가 필요하다. 함께 발전해야 예술가 개인의 위상이 높아질 것 이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고 가자고 했다.
Q 예산은 모든 문화예술단체가 가장 많이 토로하는 문제다.
A 경기도의 예산 상황이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인 것을 안다. 그러나 예산이 없다고 항상 해오던 문화예술행사마저 지원하지 않은 채 손 놔버리면 안된다. 경기예총의 예산 사정은 너무 형편없다. 이월금이 단 130만원이다. 경기도에서 지원하는 경상비는 한 사람의 일년 최저 인건비에도 못미치는 실정이다. 적은 행사 운영비에서 조금이라도 남겨 인건비를 지급하게 되는 악순환이다. 결국 예술인을 나쁜 사람 만드는 구조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도비와 시군 예산 매칭으로 이뤄지는 문화사업지원비가 끊겼다. 도가 예산 지원을 끊자, 지자체 역시 도비 지원을 기다리며 매년 개최했던 문화예술행사(공연 및 전시 포함)조차 매칭 예산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도청이나 경기도의회 등에 이 같은 현실을 알렸지만 딱히 해법이 없는 상황이다. 경기도지사 면담 신청을 해놨다. 지금의 상황은 경기도 예술 말살 정책으로밖에 볼 수 없다. 예술인의 뜻이 관철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낼 것이다. 최악의 경우 집단시위와 집단 파업도 불사하겠다. 예술인 전부 작업을 멈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Q ‘예술인 파업’,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예술인 지원의 필요성을 밝힌다면.
A 지역마다 문화의 특성이 각기 다르게 존재한다. 특히 31개 시군으로 구성된 경기도의 경우 너무 다른 지역적 특성이 있다. 이렇듯 각기 다른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통해 함께 어우러지는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경기도로 하나될 수 있다.
게다가 우리(도민)는 이미 알게 모르게, 기다리든 기다리지 않든 문화예술에 노출돼 있고 영향을 받고 있다. 하루아침에 문화예술이 없어진다면, 얼마나 삭막해지겠는가. 개인적으로 예산 문제만 해결이 된다면 경기도를 한국 예술의 중심 도시로만들 자신이 있다.
Q 경기도가 문화예술의 중심 도시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A 그동안 경기도는 수도 서울과 가깝다는 이유로 많은 피해를 봤다. 예를 들어 수원시미술전시관, 단원미술관, 성남아트센터 전시장 등 도내 좋은 전시 공간이 있어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전시하려 한다. 서울과 가까워서 생긴 단점이다. 전시나 공연모두 서울에 집중돼 있다. 그런데 이것을 장점으로 만들 수 있다. 서울 사람들이 내려와서 보게 만들, 최고 수준의 전시와 공연ㆍ행사를 해야 한다. 경기도 예술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 이를실현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Q 내부 화합이 우선일 것 같다. 구체적 복안을 제시해달라.
A 지난 5일 어린이날, 의왕시에서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한지구촌예술축제를 열었다. 특별히 대중가수를 초청했다.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한 만큼 아프리카, 멕시코, 러시아, 에콰도르 등 세계 각국의 공연팀도 무대에 올렸다. 경기예총이 주관하는 만큼 회원 단체가 주인공이어야 하지만, 전통예술과 순수예술 만으로는 도민의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한계가 있다. 인지도가 있는 가수를 불렀고, 그 덕에 좀 더 많은 관객이 모인 상태에서 회원들의 문화예술을 알리는 기회를 가질 수있게 됐다. ‘우리’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 아닌 다른 팀(사람)과함께해야 한다. 무엇보다 첫 번째 목적은 도민이 즐거워야 한다. 경기예총의 대표적 행사가 지구촌예술축제와 경기예술제인데 도민이 즐겁고 경기도 예술인이 모두 화합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겠다.
Q 우리를 위해 우리의 경계를 허물겠다는 방침이 인상적이다. 앞으로 추진하고 싶은 사업은 또 무
엇인가 .
A 첫 번째로 도내 버려진 공장과 폐교 등 빈 건물을 공연 시설이나 화실 등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혜택을 받은 작가는 공간 사용료 대신 작품 일부를 해당 지자체에 기부, 신축 관공서나 도민을 위한 공간에서 이를 보여준다면 상부상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선거 유세 당시 돌면서 경기 북부지역이 문화적으로 열악하다는 것을 느껴 고민한 프로젝트다. 북부지역에는 문화예술회관
이 있어도 그 곳에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적다. 문화예술인이 관객을 찾아가야한다. 무대차를 제작해 찾아가서 음악, 무용, 연극 등 공연하는 것이다.
경기도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경기도는 통일을 대비해야 하는 지역이다. 문화예술로 풀어야 한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1년 동안 일본 전역에서 김정일이 직접 운영한 일종의 집단 그림 공장인 ‘만수대창작사’의 소속된 북한 최고의 화가들과 전시를 했었다.
한국에서는 운보 김기창, 천경자 등 원로화가들이 대거 참여했고 내가 당시 막내였다. 올 초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남북 화가 140명이 참여한 서울 전람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제 통일을 준비해야 하고, 국가에서 못하는 일을 예술가들이 할 수 있다고본다. 경기예술인이 앞장서야 한다. 합작 영화, 합작 공연, 아시아비엔날레 등 다각도로 구체적인 것을 고민 중이다.
Q 다른 기관과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할 것 같다. 응원하겠다.
A 도민은 예총이 있는지도, 무슨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예총 의 역할이 좀 더 활발해져야 한다. 문제는 경기예총이 주관하는 행사 홍보도 없고 심지어 홈페이지조차 없다. 취임 후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있다. 회원들이 서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회보도 제작할 계획이다. 기업 후원을 받기 위해 뛰겠다. 경기예총 소속 예술인도 스스로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채찍질하겠다. 실력있는 예술인을 모아 그들이 재능을 뽐낼 수있는 판을 만들어, 다른 예술인들을 자극할 수 있도록 하겠다.
최근 정책팀을 구성했다. 처음일 것 같다. 통일에 대비한 사업도 정책팀에서 나왔다. 경기예총은 이제 예술인의 좋은 발상을 토대로 한 효율적인 문화 정책을 구상할 것이다.
류설아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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