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핏하면 고령화 사회를 거론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젊어지는 도시’가 있다.
‘행복도시’라 일컫는 세종시. 인구의 86%가 40代 이하로 평균연령이 31.1세. 우리나라에서 가장 젊은 도시로 알려진 경북 구미시의 35세보다 평균 연령이 4세 젊다. 대한민국 행정의 70%가 이루어진다는 세종시로서는 가장 큰 발전 동력인 셈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고무적인 현상에 가끔은 정치가 찬물을 끼얹기도 한다. 이번에 전국을 강타한 소위 ‘성완종 리스트’가 그런 것이다.
지난 4월27일, ‘이완구 국무총리의 무대’가 단막극으로 끝나던 날, 세종시의 한 부동산중개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공인중개사 H씨는 주상복합 상가에 있는 점포 하나를 계약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1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부동산업소 사무실의 벽에 걸린 TV에서는 종편 방송들이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과 이완구 총리의 3천만원 불법정치자금 수수여부에 대한 뜨거운 이슈들이 다루어지고 있었다. 그 때 중개업자 H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기다리던 점포 계약 희망자였다.
“아니 계약을 보류하신다고요? 이완구씨가 국무총리 그만두는 것 하고 점포 계약하는 것 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H씨의 얼굴은 실망이 역력했다. H씨는 전화를 끊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이제 호남사람, 서울사람이 총리되면 세종시에 신경 쓰겠어요?“
사실 이완구씨가 총리에 지명되었을 때 충청도, 특히 세종시민들이 가장 반겼던 것은 이제 세종시가 제대로 되겠구나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종시를 기업도시로 바꾸려던 이명박 대통령에 정면으로 맞서 도지사직을 팽개친 사람이 국무총리가 되었으니 세종시야말로 날개를 얻은 것과 같지 않은가.
그런 기대에 부응하듯 그는 총리가 되자마자 총리공관이 있는 세종시 어진동에 주민등록을 이전했고 아직 서울에 남아있는 국민안전처, 인사혁신처를 금방이라도 세종시로 옮길 듯 적극적 자세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세종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들, 이를테면 정부 세종청사 공무원들의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인 출퇴근 문제, 특히 국회출석으로 빚어지는 업무공백 문제 같은 것도 국회분원 설치 등 근본적으로 잘 해결되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것은 결국 세종시의 부동산 경기에도 영향을 주어 아파트 분양이나 시설투자에 속도를 내게 했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로 이완구 총리가 낙마하면서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앞에 언급한 부동산 중개업자의 불평이 바로 그런 알러지성 반응이다. 실제 이와 같은 상황은 세종시 전체로 퍼지고 있다.
활발하던 부동산 거래가 주춤하고 심지어 세종시로 이전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서울 소재 부처의 공무원들 사이에선, 이번 ‘성완종 리스트’가 이전 반대의 좋은 구실이 되고 있다는 게 공공연한 이야기다.
일부에서는 내년에 총선거도 있고, 세종시 개발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던 국무총리도 낙마한 만큼 세종시의 미래를 걱정하는 소리도 높다. 정말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위해 추진돼온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가 충청도 출신 국무총리면 탄력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뒷걸음 친다면 그것은 국가적으로 매우 불행한 일이다. 이러다 ‘가장 젊은 도시 세종’이 ‘가장 늙은 도시’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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