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아슬아슬 kt wiz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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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은 박종환 감독의 해였다. 멕시코 청소년 축구 대회에서 4강을 이뤘다. 당초 출전 자격도 없었다. 북한이 징계를 받아 대신 나간 대회였다. 연전연승하는 우리 선수들을 향해 세계가 찬사를 보냈다. 그 그라운드에 초라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박 감독이 있었다. 날카로운 눈빛, 강한 지도력…. 온 국민은 그를 ‘카리스마의 화신’이라 불렀다. 카퍼레이드를 하는 그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이후 카리스마라던 그의 스타일이 발목을 잡았다. 1983년 그의 지도를 받던 성인 대표팀 선수들이 선수촌을 무단 이탈했다. 독선적 지도 방식에 반발하면서다. 그때까지도 국민은 그를 믿었다. 이탈한 선수들을 나무랐다. 그러나 1996년이 그에겐 끝이었다. 아시안컵 8강 전에서 이란에게 2대6으로 대패했다. 여론이 돌아섰다. 지도 방식이 비난을 받았다. 그후 다시는 국가대표팀을 맡지 못했다. ▶2001년은 거스 히딩크에게 위기였다. 대표팀 감독에 취임한 이후 연거푸 졌다. 컨페더레이션컵에서 프랑스에 0대 5로 대패했다. 체코와의 원정 경기에서도 0대 5로 패했다. 여론이 악화됐다. 그가 여자 친구와 입국하는 장면까지 미움의 대상이 됐다. 그를 경질해야 한다는 요구가 쇄도했다. 월드컵이 반년만 더 남았어도 그는 경질됐을 것이다. ▶그랬던 그가 1년 뒤 영웅으로 돌아왔다. 2002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스페인을 물리쳤다. 불과 1년여 전의 비난들이 칭찬으로 바뀌었다. 연패의 악몽은 강팀과의 맞춤형 지도력으로, 자유 방임형 생활태도는 자율을 강조하는 앞서가는 지도력으로 재해석됐다. 그가 바뀐 것이 아니라 그를 보는 여론이 바뀐 것이다. 그 변화의 기준에 ‘월드컵 4강’이라는 성적이 있었다. ▶야구단 kt위즈를 보는 지역의 시선이 아슬아슬하다. 개막 한 달 동안 성적이 3승 25패였다. 승수 하나를 얹어 준다 해서 다른 팀들 사이에 ‘보약’으로까지 불렸다. 야구장을 찾는 팬이 급감했다. 덩달아 지역 여론도 나빠졌다. 구단 운영에 너무 인색하다는 비난도 나왔다. KT 그룹 전체에 대한 비난까지 꿈틀댔다. 5월 들어서 성적이 나아지면서 다소 잠잠해진 상태다. ▶kt위즈도 박종환ㆍ히딩크와 같다. 성적에 따라 여론은 달라진다. 이기면 좋은 소리 듣는 것이고, 지면 나쁜 소리 듣는 것이다. KT가 10구단 유치에 뛰어들면서 내걸었던 약속들이 많다. 서수원권에 대규모 돔구장을 짓겠다는 약속도 그 중 하나다. 성적이 나쁘면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는 질문들이다. ‘돔구장 프로젝트는 왜 시작하지 않는가’ ‘백지화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인가’.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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