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저 사람들처럼 고통 받는 나병환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1873년 몰로카이 섬의 나환자 집단촌에서 다미안 신부는 그렇게 기도했다. 지금은 하와이의 6개 섬 가운데 아름다운 해안선과 관광시설로 세계적 명소가 되어있는 몰로카이 섬이지만 19세기만 해도 나병환자의 집단촌으로 마을은 생지옥을 이루고 있었다.
희망은 없고 절망의 아우성뿐이었으며 마약, 술, 싸움, 악취로 가득했다. 이런 저주받은 섬에 벨기에 출신의 다미안 신부가 파견된 것이다.
그는 나환자들에게 치료와 함께 정신적 평화를 심어주기 위해 열정을 다 바쳤으나 오히려 냉소와 불신만 받았다. 이에 다미안 신부는 그들과 같은 고통을 함께하지 않고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음을 깨닫고 ‘저도 나환자가 되게 해주십시오.’하고 기도를 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나병에 걸려 얼굴이 문드러지고 팔이 뒤틀리는 등 고통을 겪다 세상을 떠나고 만다. 마침내 섬의 나환자들은 다미안 신부의 숭고한 사랑에 감동되어 악습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섬에는 평화가 찾아오게 된다.
특히 나병 퇴치를 위한 다미안연구소가 세워졌고 지금은 쾌적한 관광지가 되었다. 자기의 모든 것, 생명까지도 던지는 다미안 신부야 말로 ‘영혼’을 지닌 지도자의 모습이다.
우리의 육군사관학교는 해마다 졸업식 때 ‘강재구’상을 수여한다. 육사 16기인 강재구 소령은 인천 출신으로 1965년 10월 4일 부대 훈련중에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자기 몸을 던져 막음으로써 목숨을 잃었지만 많은 부하들을 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육군사관학교는 교정에 그의 동상을 세웠고, 정부는 교과서에도 오르게 하여 ‘영혼있는 인물’의 유훈을 길이 전하게 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공직자에 영혼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이제는 아예 공직자는 영혼이 없는 별천지 사람이 되었고 국회의원쯤 이르면 ‘영혼’은 고사하고 세금 내는 것이 아까운 존재로 치부되고 있다. 나라를 지키는 군마저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적의 잠수함을 탐지하기 위해 건조된 군함에 물고기 탐지기를 달아 돈을 챙긴 군지휘관과 계속되는 각종 무기 구입 비리가 과연 ‘강재구’의 후배들인지, 영혼이 있다고 할 수 있는지도 묻고 싶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한 사람들도 바로 공직자들이었고 지금 와서 비판하는 사람들도 그들이다. 세월호 침몰로 콘트롤타워가 없이 우왕좌왕하다 1년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사람들도 ‘영혼 없는’ 그들이었고 이제는 ‘메르스(MERS)’로 온 국민을 불안 속에 몰아 넣고 있는 것도 역시 콘트롤 타워 기능을 상실한 그들이다.
다미안 신부나 강재구 소령 같은 자신을 던져 희생하는 영혼있는 공직자를 볼 수가 없다. 책임 떠넘기기, 변명이 전부다.
이번 ‘메르스’는 세월호 때 보다 더 심각하여 국가경제는 물론 동네 냉면집까지 문을 닫게 만들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손쓰는 게 어설프고 아마추어 수준인가? 허둥대는 모습이 정말 답답하다. 또 다른 대형사고가 터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문득 2006년 도박판 세계를 그린 영화 ‘타짜’가 생각난다. 손톱으로 화투 뒷면을 눌러 비밀 표시를 하고, 성냥갑 밑으로 화투장을 전달하는가 하면 라이터에 반사되는 것을 이용해 상대방 패를 읽는, 그야말로 ‘타짜’의 솜씨는 가히 ‘신의 손’이었다. 손끝으로 화투장 그림을 읽기까지는 때로는 손가락이 잘려 나가는 고통쯤은 각오해야 했다. 그렇게 하여 프로 즉 ‘타짜’가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 공직자, 차라리 영혼은 없어도 자기 업무에 철저한 ‘타짜’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우왕좌왕하지 않고 100% 철저히 자기 업무를 해내는 프로정신, 그리하여 이밤, 국민이 편히 잠잘 수 있게.
변평섭 前 세종시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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