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메르스와 장마-說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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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와 관련된 설(說)이 많다. 대부분 불안감을 조장하는 내용들이다. 간혹 병원 경영에 치명타를 주기도 한다. 드물게는 희망을 섞어 유포되는 설이 있기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메르스와 비의 관계에 얽힌 내용이다. ‘메르스 균이 습기에 약하다’거나 ‘비가 오면 메르스가 사라진다’는 주장이다. 적어도 사회 혼란을 야기하지는 않는다. 병원이나 자영업에 주는 타격도 없다. 그저 ‘비라도 와서 메르스 균을 쓸어 갔으면…’하는 바람이 표현됐을 뿐이다. ▶2013년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알레르기 전염병연구소의 조사 결과가 있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기온 20도, 습도 40% 환경에서 48시간 이후까지 살았다. 30도, 80% 환경에서는 8시간밖에 살지 못했다. 기계적 방식을 도입한 다른 조사도 있다. 환자가 기침할 때처럼 바이러스를 내뿜고 10분 뒤 다시 포집했다. 기온이 같은 20도를 기준으로 습도가 40%일 때는 바이러스의 7%가 줄었다. 습도가 70%일 때는 89%나 줄어들었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비에 약하다는 설의 근거가 되는 통계다. ▶지난 20일, 메르스 확진자가 한 명도 없었다. 지난 3일 이후 16일 만에 처음이었다. 마침 이날은 경기북부 등에 모처럼 단비가 내렸다. 파주시에는 호우 주의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기온도 평소보다 7~8도 낮은 23도 안팎을 기록했다. 감염 사태 종식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아졌다. 많은 이들에게 메르스와 비의 관계가 설이 아닌 진실로 다가왔다. 이후 21, 22일은 메말랐다. 공교롭게 다시 확진자가 발생했다. ▶메르스와 비의 관계. 이 ‘설’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근거 없다’다. 미국의 실험 결과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금의 메르스는 미국 등에서 보였던 전파 형태와 전혀 다른 추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감염의 대부분은 대기 감염이 아니라 병원 내 감염이 주를 이룬다는 점도 부정적 견해의 근거다. 여기에 에어컨을 주로 사용하는 실내 환경이 습도를 낮게 유지해 비로부터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래저래 메르스와 비를 연결하는 설에는 허술한 구멍이 많아 보인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메르스가 비에 약하다’는 가설을 믿고 싶어 한다. 쏟아지는 비가 몹쓸 병균을 완전히 쓸어 가 줄 것이라 믿고 싶어 한다. 지금 도처에서 치러지는 기우제에도 그런 희망이 포함돼 있다. 의술이 해결 못 한 질병 사태를 비에라도 기대해 보려는 절박한 기원이다. ‘메르스와 비’에 얽힌 ‘설’. 혹,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더라도 곧 있을 장마철에서만은 맞아떨어지기를 바란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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