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피카소 청색시대를 잊을 수 없다. 파리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의 작품보다 필자에게 인상이 깊었던 작품은 에르미타주의 청색시대였다. 명품 미술관에는 명작이 있다.
한국의 미술관 중에는 박생광의 작품을 모아 전시한 이영미술관, 환기미술관, 이응로 미술관 등 개인 작품을 전시한 미술관이 돋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움이 종합 미술관이라면 이러한 단품 미술관은 작지만 특색이 있는 명품 미술관이다.
피카소의 청색시대가 어떻게 에르미타주에 소장되게 되었을까? 이영미술관은 왜 유독 박생광 작품을 주로 모았을까? 호림 박물관은 왜 도자기를 전문으로 수집한 박물관일까? 마티스의 작품은 어떻게 러시아에도 뉴욕에도 같은 작품이 있을까?
모나리자는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이 아니라 루브르박물관에 있을까? 왜 이중섭미술관, 박수근미술관에는 원작이 거의 없을까? 이러한 질문은 미술관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자연히 생기는 질문이다.
일반적으로 관람객은 미술관에서 작품을 판매하는가, 어떤 기준으로 작가를 초대하는가, 전시에 초대된 작가들은 양평작가들인가, 그리고 좀 더 관심을 갖는 분은 작품의 선정 과정과 절차에 관해 궁금해한다. 반면에 전문가는 작품의 형식과 상징, 미술사적 의의와 가치, 사회경제적 배경 등을 생각한다.
명품미술관의 조건은 무엇일까? 전시, 교육, 보존, 연구, 서비스 등 여러 기능들이 온전히 수행될 때에 비로소 좋은 미술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비전과 능력을 가진 관장, 연구 성과가 높은 학예사,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 등 인력과 시설 또한 중요한 요건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은 작품을 소장하는 것이 기본이다.
대부분 공공미술관의 소장품 수집은 1년 단위로 일정기간 동안 공지를 통해 공개모집하고 이를 심사하여 작품을 선별하게 된다. 미술작품에 대한 심사는 작품성과 심미적 판단, 해당 미술관의 수집 방향 등을 고려해야 하는 전문 영역이다. 비전문가가 미술작품을 평가하고 선정 심사를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주무과장이라는 이유로 작품 선정 심사에 참여한다.
이렇게 작품 심사 결과에 대한 확인에 그치지 않고 심사를 한다면, 이는 예술분야의 전문성에 대한 몰이해뿐 아니라 예술에 대한 관리의 번문욕례(red-tape)이다. 일반 관리는 규칙과 기준을 원칙으로 삼는다. 그러나 예술작품에 대한 판단은 규칙과 기준이 아니라 예술성이라는 매우 다른 잣대로 평가하는 것일 뿐 아니라 미적 판단 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공공미술관이 명품을 소장하는 것은 예산 등 여러 제약 조건으로 인하여 쉬운 일이 아니다. 사립미술관과 달리 관장의 취향이나 선호에 따라서 작품 수집이 편중되어서도 안 된다. 공공미술관에 부여된 미션과 앞으로의 비전에 따라서 그에 맞는 작품이 소장되어야 한다.
전문가는 비전문가가 알 수 없는 작품별 차이와 특성을 구별해 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이중섭, 박수근 위작 사건이나 천경자 작품 진위사건 등은 미술작품에 대한 미적 판단이 얼마나 어렵고 전문적인 것인가 하는 것을 말해주는 반증이다.
이제 공공미술관도 관리 행정에서 전문가에 의한 전문 운영 시대가 되어야 한다.
이철순 양평군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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