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봉 칼럼] ‘위기 혹은 도약’ 한국패션의 미래

올해 여름은 폭염이나 태풍보다도 먼저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가 불쑥 찾아와 우리 사회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 패션도 예외가 아니다.

명동이나 동대문에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크게 줄었고, 이에 따라 외국인 관광쇼핑을 대표하는 두타는 매출이 70~80%나 줄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7월 예정이었던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패션코드도 메르스 때문에 연기되었다. 하이패션 업체는 영세 기업에 가깝다. 이런 위기는 디자이너들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금 디자이너들은 서울패션위크(SFW)의 큰 변화에 맞닥뜨렸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혼란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소통없는 일방적 진행은 패션계의 자유로움을 해칠까 우려된다. CFDK와 소속된 일부 디자이너들은 이런 SFW에 대해 보이콧을 발표하기도 했다.

많은 유수의 패션의 국가, 도시와 마찬가지로 한국 패션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컬렉션과 전시회 두 가지 모두가 동반 성장해야 한다. 컬렉션의 경우 서울패션위크를 중심으로 부산이나 대구의 소규모 컬렉션까지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다. 반면 전시회의 경우에는 86년부터 작게 시작되었지만 명맥만 유지되고 있는 수준이었다.

서울패션위크에서도 10여년을 진행했었지만 애물단지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낙후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주관하는 패션코드나 인디페어가 생기면서 몇 년 전부터 바이어들 수주가 중심이 되는 제대로 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고 지금까지 계속 성장하고 있다.

서울은 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도시이다. 세계의 패션 피플, 기업들이 앞다투어 서울로 몰려들어 패션쇼와 전시를 하려고 한다. 광화문에서는 루이 비통의 전시가 있었고 DDP에서는 샤넬의 크루즈 패션쇼가 있었고 현재는 디올의 ‘디올정신’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올 가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소재 박람회가 세빛둥둥섬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렇게 서울이 아시아의 핫한 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패션도시로서의 글로벌화를 위한 서울시의 정책은 우려스럽다. 특히 신진 디자이너의 등용문이라고 할 수 있었던 제네레이션 넥스트가 없어진 것은 정말 안타깝다.

소수정예의 디자이너에게 집중된 프로젝트로 인해 많은 신진 디자이너들이 목표를 잃고 방황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소수정예에게만 지원이 집중된다면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신진의 젊은 디자이너들의 성장과 패션 산업 전반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또한 패션쇼의 궁극적인 목적은 판매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서울시의 정책은 홍보전략에만 치중되어 있다. 지금까지는 좋은 청사진이었을 수 있지만 이제는 홍보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혜택을 받고 전반적으로 한국패션을 선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서울패션위크의 선발 기준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시하기 전에 공론화나 공청회 등을 했다면 얼마나 발전적인 모습으로 나갈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리 새롭고 획기적인 기획안과 심사기준을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독단적 진행은 소통의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특히 관이 진행하는 일은 다수를 위한 일임은 물론이고 또한 다수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많은 디자이너들은 한국 패션에 희망을 갖고 있다. 한국패션은 많은 시련을 겪으며 부단하게 발전의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 계속 걸어가야한다.

4대 컬렉션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그들을 모방하며 따라가기보다는 한국패션이 서울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며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한류는 잠깐의 바람이라는 말들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문화를 넘어 산업으로 나아갈 시점이고, 그 선두는 패션이라고 생각한다.

이상봉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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